2015년 12월 13일 일요일

믿음 곧 신뢰?



누구나 한번쯤 ‘믿음은 들음에서 난다’는 말을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기독교인이라면 더욱 그렇다. 교회 안에서 자주 강조하고 인용하며 암송까지 했던 구절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 (로마서 10:17)


믿음이란 ‘신뢰’라는 의미로 풀이할 수 있고, 들음은 ‘경청’이라는 단어로 대체할 수 있을 것이다. 즉 우리의 믿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을 경청하는 것에서 비롯됨을 알 수 있다.


내 양은 내 음성을 들으며 나는 그들을 알며 그들은 나를 따르느니라 (요한복음 10:27)


‘내 양은 내 음성을 듣나니’ 하신 말씀과 같이 하나님의 백성들은 사람의 말을 듣고 맹종하기보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순종하려는 특징이 있다. 이천 년 전 바리새인 등의 교리에 굴복하지 않고 오직 그리스도의 말씀을 전했던 믿음의 참 선지자들의 삶이 이를 증명해준다.


내가 그리스도를 본받는 자 된 것같이 너희는 나를 본받는 자 되라 (고린도전서 11:1)


안식일마다 바울이 회당에서 강론하고 유대인과 헬라인을 권면하니라 (사도행전 18:4)


너희는 누룩 없는 자인데 새 덩어리가 되기 위하여 묵은 누룩을 내어버리라 우리의 유월절 양 곧 그리스도께서 희생이 되셨느니라 이러므로 우리가 명절(유월절)을 지키되… (고린도전서 5:7~8)


이처럼 믿음의 선진들은 당시 교권을 잡고 있었던 교단이나 교파 혹은 사람에 굴복하지 않고 오직 그리스도를 본받아 그리스도의 말씀을 전했다. 그 결과 자신의 구원뿐 아니라 타인의 구원까지도 이룰 수 있었다.


반면 거짓 선지자로 대표되는 바리새인들은 그리스도의 말씀을 따르지 않고 ‘불법’을 행했다. 예수님께서는 그런 바리새인들을 저주하셨다.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는 천국 문을 사람들 앞에서 닫고 너희도 들어가지 않고 들어가려 하는 자도 들어가지 못하게 하는도다 … 겉으로는 사람에게 옳게 보이되 안으로는 외식과 불법이 가득하도다 … 뱀들아 독사의 새끼들아 너희가 어떻게 지옥의 판결을 피하겠느냐 (마태복음 23:13~33)


불법을 밥 먹듯 했던 바리새인들을 향한 예수님의 질타는 무서웠다. 신앙 안에서 불법을 행하는 일은 지옥의 판결을 피할 수 없을 만큼 무거운 죄인 것이다. 오늘날 그리스도를 믿는 우리들이 눈여겨봐야 할 대목이다.


과연 내가 그리스도의 법을 지키고 있는지, 불법을 행하고 있는지 두려움으로 점검해야 할 것이다. 그 기준은 그리스도의 말씀 곧 성경이다. 옛적 믿음의 선진들이 새 언약 안식일과 유월절을 지켜 구원을 이루었다는 사실을 기억하며, 오늘날도 하나님의 법을 지키는 믿음이 필요하다. 만약 새 언약 그리스도의 법을 지키고 있지 않다면 신앙의 터닝포인트가 시급하다.


구원에 이르게 하는 믿음은 거저 생기는 것도 아니고 거짓 선지자의 말을 들어서 생기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우리 목사님’의 생각과 주장을 듣기 전에, 그리스도의 말씀을 경청하길 바란다. 그렇게 했을 때 비로소 구원을 이루게 될 것이며, 고차원적인 세계 즉 천국에 당도하게 될 것이다.

출처: 패스티브 닷컴

2015년 9월 14일 월요일

생명과와 유월절- 하나님의교회(안상홍님)


모든 인류는 죽음의 고통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성경은 죽음의 원인을 에덴동산에서의 선악과 범죄 때문이라고 알려주고 있다.


이러므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 (로마서 5:12)


그런데 대부분의 기독교인들은 먹으면 죽는 선악과는 알아도, 먹으면 영생하는 생명과가 있다는 사실은 잘 모른다.


여호와 하나님이 그 땅에서 보기에 아름답고 먹기에 좋은 나무가 나게 하시니 동산 가운데에는 생명나무와 선악을 알게하는 나무도 있더라 (창세기 2:9)


생명나무는 무슨 역할을 하며 선악과 나무는 무슨 역할을 할까.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에게 명하여 가라사대 동산 각종 나무의 실과는 네가 임의로 먹되 선악을 알게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 하시니라 (창세기 2:16~17)


선악과 나무의 실과는 먹으면 죽게 된다. 그러나 아담과 하와는 옛 뱀 즉, 마귀의 미혹을 받아 선악과를 먹었고 그 결과 모든 인류는 사망이라는 결과에 이르게 되었다. 그렇다면 인류가 다시 살 수 있는 길은 없을까?


여호와 하나님이 가라사대 보라 이 사람이 선악을 아는 일에 우리 중 하나 같이 되었으니 그가 그 손을 들어 생명나무 실과도 따먹고 영생할까 하노라 하시고 (창세기 3:22)


선악과를 먹고 죽게 된 인생이라 할지라도 생명과를 먹으면 영생하리라 말씀하셨다. 선악과의 범죄로 죽게 된 인생들이 다시 생명을 얻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은 바로 생명과뿐이다. 그렇다면 먹으면 영생하는 생명과는 무엇일까? 예수님께서는 창세로부터 감추인 비밀들을 친히 드러내주시겠다고 말씀하셨다.


예수께서 이 모든 것을 무리에게 비유로 말씀하시고 비유가 아니면 아무 것도 말씀하지 아니하셨으니 이는 선지자로 말씀하신바 내가 입을 열어 비유로 말하고 창세부터 감추인 것들을 드러내리라 함을 이루려 하심이니라 (마태복음 13:34~35)


예수님께서는 창세로부터 감추인 비밀 중에 생명과에 대한 비밀을 다음과 같이 드러내 주셨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인자의 살을 먹지 아니하고 인자의 피를 마시지 아니하면 너희 속에 생명이 없느니라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영생을 가졌고 마지막 날에 내가 그를 다시 살리리니 내 살은 참된 양식이요 내 피는 참된 음료로다 (요한복음 6:53~55)


먹으면 영생하는 생명과는 비유였으며 그 실체는 바로 예수님의 살과 피다. 그리고 예수님의 살과 피를 유월절의 떡과 포도주로 약속하여 주셨다.


선생님 말씀이 내 때가 가까왔으니 내 제자들과 함께 유월절을 네 집에서 지키겠다 하시더라 하라 하신대 제자들이 예수의 시키신대로 하여 유월절을 예비하였더라 ··· 저희가 먹을 때에 예수께서 떡을 가지사 축복하시고 떼어 제자들을 주시며 가라사대 받아 먹으라 이것(유월절 떡)이 내 몸이니라 하시고 또 잔을 가지사 사례하시고 저희에게 주시며 가라사대 너희가 다 이것을 마시라 이것(유월절 포도주)은 죄 사함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 (마태복음 26:17~28)


그러므로 누구든지 예수님의 약속을 믿고 유월절 성만찬을 먹고 마시는 자는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된다. 그러나 이토록 소중한 유월절 진리가 로마 가톨릭에 의해 325년 니케아 회의에서 폐지되고 말았다. 유월절의 폐지는 생명과를 다시 잃어버렸다는 뜻이며 이로 인해 영생의 소망도 끊어지게 되었다. 그렇다면 누가 생명과를 다시 회복하여 구원의 길로 인도할 수 있을까?


성경은 다시 구원의 길로 인도하실 분은 두 번째 오시는 그리스도라고 예언하였다.


이와 같이 그리스도도 많은 사람의 죄를 담당하시려고 단번에 드리신바 되셨고 구원에 이르게 하기 위하여 죄와 상관 없이 자기를 바라는 자들에게 두번째 나타나시리라 (히브리서 9:28)


2천년 전 예수님께서도 구원에 이르게 하기 위하여 생명과인 유월절 진리를 가지고 오셨다. 마찬가지로 구원에 이르게 하기 위하여 두 번째 오시는 재림 예수님도 생명과인 유월절 진리를 가지고 오셔야 한다. 그 분이 바로 안상홍님이다.


전 세계적으로 새 언약 규례에 따라 성력 정월 14일 저녁 유월절 성만찬을 행하는 교회는 재림 예수님 안상홍님께서 세우신 하나님의교회 세계복음선교협회가 유일하다. 죽게 된 원인인 선악과만 가르치는 곳은 구원의 교회가 아니다. 영원한 생명을 얻는 참다운 구원의 소식, 생명과의 진리를 전하는 교회가 구원의 교회다.

출처: 패스티브닷컴

2015년 9월 2일 수요일

어리석은 자 - 하나님의교회


성령시대 구원자이신 성령과 신부께서 오셨으나 세상은 누구도 알아보지 못하고 있다.
오직 하나님의교회에서만이 성령과 신부이신 엘로힘하나님을 만날 수 있어요~
다음 예화를 통해 가치있는 분을 알아보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 수 있어요~

어느 날, 모스크바의 한 출판사에 수염이 텁수룩하고 볼품없는 모습의 한 남자가 들어왔다.
“내 원고를 책으로 내주었으면 좋겠소.”
출판사 사장은 어이가 없다는 듯 대답했다.
“그런 원고는 여기에 얼마든지 굴러다니고 있소. 설령 당신이 출판비용을 모두 부담한다고 해도 그렇게 해줄 수 없소.”
그러자 남자는 원고뭉치를 다시 품에 넣으며 이렇게 말했다.
“나는 대중이 나의 글을 기다리고 있다고 믿고 썼는데요?”
남자의 의미심장한 말에 놀란 출판사 사장은 그제야 그의 이름을 물었다.
그 남자는 대답했다.
“내 이름은 톨스토이입니다.”
그러자 출판사 사장은 의자에서 벌떡 일어나 톨스토이에게 사과하며 원고를 내주기를 간청했다. 하지만 톨스토이는 그의 손을 뿌리치고 밖으로 나가버렸다.

출처: 패스티브닷컴

그가 세상에 계셨으며 세상은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되 세상이 그를 알지 못하였고 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지 아니하였으나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요한복음 1:10~12)


계 22:17 성령과 신부가 말씀하시기를 오라 하시는도다 듣는 자도 오라 할 것이요 목마른 

자도 올 것이요 또 원하는 자는 값없이 생명수를 받으라 하시더라

생명수 주시는 성령과 신부이신 하나님을 하나님의교회에 오시어 만나보세요~~









2014년 3월 30일 일요일

새언약 유월절을 지키는 하나님의교회




예수님께서 재림 하실때에는 이 세상에 믿음을 볼 수 없다고 하셨다.
믿음이 없는 세상에서 재림과 동시에 심판이 이루어진다면 이 세상에 구원받을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눅 18:8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속히 그 원한을 풀어 주시리라 그러나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나 하시니라

믿음이 없다면 모두다 멸망이다. 이렇게 교회가 많은데 믿음이 없단 말인가?
믿음이 있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세워주신 하나님의 법을 지키는 것이고
믿음이 없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세우지 않은 불법을 행하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에게 하나님의 법을 알려주시고자 재림 그리스도께서 오시어 새언약을 세워
주신 것이다.
새언약 유월절을 지키는 교회는 하나님의교회 뿐입니다.

히 9:28 이와 같이 그리스도도 많은 사람의 죄를 담당하시려고
단번에 드리신바 되셨고 구원에 이르게 하기 위하여
죄와 상관 없이 자기를 바라는 자들에게 두번째 나타나시리라



슬피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하나님의교회>



도대체 얼마나 슬프고 분통이 터지는 경우에 ‘슬피 울며 이를 간다’는 표현을 쓰게 될까. 교활한 자의 계략에 빠져 억울하게 누명을 쓰고, 말도 안 되는 형벌까지 당한다면 억울하고 분통이 터져서 이를 갈게 될까. 평범하게 살아가는 사람들로서는 이해가 가지 않는, 이런 상황에 대해 예수님께서는 성경을 통해 설명해주셨다.


예수께서 들으시고 기이히 여겨 좇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스라엘 중 아무에게서도 이만한 믿음을 만나보지 못하였노라 또 너희에게 이르노니 동서로부터 많은 사람이 이르러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함께 천국에 앉으려니와 나라의 본 자손들은 바깥 어두운 데 쫓겨나 거기서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 (마태복음 8:10~12)


가버나움 지역의 한 백부장은 예수님께서 육체로 오신 하나님이라는 것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예수님께서는 백부장의 믿음을 기뻐하셨다. 반면 선민사상에 사로잡혀 당연히 구원받으리라 자부했던 바리새인들의 결과는 달랐다. 오래도록 여호와 하나님만을 섬겨온 그들의 눈에 예수님은 사람 되어 자칭 하나님이라고 신성모독을 하는 몹쓸 사람으로 비쳐졌기 때문이다. 결국 예수님을 배척했던 그들의 결과는 바깥 어두운 곳에 쫓겨나 이를 가는 불쌍한 자가 되었다. 또 다른 예를 보자.


인자가 그 천사들을 보내리니 저희가 그 나라에서 모든 넘어지게 하는 것과 또 불법을 행하는 자들을 거두어 내어 풀무불에 던져 넣으리니 거기서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 (마태복음 13:41~42)


이들은 또, 왜 울며 이를 갈게 되었을까. 만약 그들이 불법이라는 것을 알고 행했다면 슬프지도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불법인지도 모른 채 하나님을 올바로 섬기는 길인 줄 알고 행했을 모든 것이 불법이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심판하시고 경에 기록된 대로 풀무불에 던져넣으셨다.


올바른 길인 줄 알고 달려갔던 그들의 심정이 얼마나 억울했을까. 차라리 일요일에 남들처럼 마음껏 놀기라도 했다면 억울함이 덜하지는 않았을까. 하나님을 믿는다는 명목 아래 즐기고 싶은 모든 것도 자제하며 살았다. 그런데 그 결과가 풀무불이다. 너무도 억울하고 분통이 터져 이를 갈게 됐으리라.


결국 이들이 슬피 울며 이를 갈게 되는 원인은 육체로 오시는 하나님을 믿지 못해서, 불법인 줄도 모른 채 불법을 행해서 초래한 결과임을 알 수 있다. 혹시 재림하신 그리스도 안상홍님을 ‘사람 되어 하나님이라 한다’며 받아들이지 못하거나, 하나님의 계명은 버리고 사람의 계명인 일요일예배와 크리스마스, 십자가 숭배 등 불법을 행하고 있다면 당장 그 길에서 돌이켜야 한다. 그 길의 끝은 어둡고, 슬픔으로 가득하며, 억울하고 원통하고 분하여 이를 갈게 되는 곳이기 때문이다.

재림하신 그리스도 안상홍님과 모든 하나님의 계명인 안식일 및 3차의 7개 절기를 지키는
곳은 하나님의교회뿐이다.





출처 : 패스티브 닷컴



2014년 3월 28일 금요일

기도 -- 하나님의교회


항상 어머니 하나님께서 우리의 영원한 생명을 위해 두손 모아 기도해주십니다.
어머니 하나님을 의지하면 기도의 응답을 받을 수 있습니다.


이 시대 요구하는 믿음 - 하나님의교회



오순절 이후, 성령을 받은 사도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증거하며 전도하기 시작했다. 이에 믿고 예수께 나아오는 무리가 많아졌고, 병든 사람과 귀신들린 자까지 고침을 입어 제자들의 가르침을 따르는 자들이 더욱 많아졌다.


이 광경을 보고만 있을 수 없었던 유대교 지도자들은 사도들을 잡아 옥에 가두었으나,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옥에서 탈출할 수 있었다. 사도들은 다시 회중들에게 나아가 예수 그리스도를 전했다. 이에 유대교 지도자들은 크게 노했고 급기야 사도들을 죽이려고 했다(사도행전 5:33). 이때 율법학자 가말리엘이 나섰다.


이스라엘 사람들아 너희가 이 사람들(사도)에게 대하여 어떻게 하려는 것을 조심하라 이전에 드다가 일어나 스스로 자랑하매 사람이 약 사백이나 따르더니 그가 죽임을 당하며 좇던 사람이 다 흩어져 없어졌고 그 후 호적할 때에 갈릴리 유다가 일어나 백성을 꾀어 좇게 하다가 그도 망한즉 좇던 사람이 다 흩어졌느니라 이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이 사람들을 상관 말고 버려두라 이 사상과 이 소행이 사람에게로 났으면 무너질 것이요 만일 하나님께로 났으면 너희가 저희를 무너뜨릴 수 없겠고 도리어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가 될까 하노라 (사도행전 5:35~39)


가말리엘은 사도 바울이 그리스도교로 개종하기 전 그에게 율법을 가르친 스승이었다. 주후 25-50년까지 이스라엘 민족에게 성경과 유대교신학을 가르친 학자로서, 당시 유대사회에 많은 영향력을 끼쳤던 인물이다.


가말리엘은 ‘드다 사건’과 ‘유다 사건’을 예로 들며 당시 사도들을 죽음으로 몰아가려 했던 무리에게 훈계했다. ‘드다’는 스스로를 위대한 인물인 것처럼 선전하던 자로, 당시 그를 따르는 사람들이 약 사백 명이나 됐는데 그가 죽고 난 뒤 좇던 사람이 다 흩어졌다. ‘유다’는 당시 시리아 총독인 구레뇨가 인두세를 걷기 위해 인구조사를 실시하던 중, 백성들을 선동하여 “로마에 세금을 바치는 자는 신령한 하나님의 백성이 아니다”라고 하면서 반란을 일으켰던 사람이다.


가말리엘은 과거에 일어났던 두 사건을 열거하며, “사도들이 전하는 것도 이와 같은 것이면 스스로 망할 것이고, 하나님께로부터 난 복음이라면 도리어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가 될까 염려스럽다”며 사도들의 처벌에 대해 신중할 것을 요구했다.


당시 회중 앞에서 이렇게 발언한다는 것은 굉장히 어려운 일이었다. 유대 지도자들이 틈만 나면 사도들을 위협하고 이단으로 몰고 비방하고 죽이려고 혈안이 돼 있던 시대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가말리엘은 시대의 분위기에 굴하지 않았다. 오히려 사건의 진상을 밝히지도 않고 무조건 사도들을 이단시하는 지도자들의 잘못을 지적했다. 가말리엘의 이 행적이 우리가 주의 깊게 살펴봐야 할 부분이다.


성령과 신부가 말씀하시기를 오라 하시는도다 듣는 자도 오라 할 것이요 목마른 자도 올 것이요 또 원하는 자는 값없이 생명수를 받으라 하시더라 (요한계시록 22:17)


성경은 생명수, 즉 구원을 주시는 분이 성령과 신부라고 분명히 기록하고 있다. 그러나 오늘날 종교 지도자들은 성경대로 오신 성령과 신부를 배척하며 하나님의교회를 이단으로 몰고 비방하고 있다. 2천 년 전 유대교 지도자들처럼 말이다.


우리는 종교 지도자들이 퍼트려놓은 유언비어에 같이 휩쓸리는 것이 아니라 가말리엘과 같은 신중함과 올바른 판단이 요구된다. 도리어 성경을 믿지 못하여 성령과 신부를 비방하는 자들의 잘못을 바르게 지적하는 용기가 필요하다.


사람으로부터 난 것은 결국 망하게 되고, 하나님께로부터 난 것은 결단코 무너지지 않는다. 2천 년 전 유대인들이 그토록 핍박했던 하나님의교회는 무너지지 않았다. 이유는 간단하다. 하나님의교회는 하나님께서 세우신 교회이기 때문이다.


출처: 패스티브 닷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