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3월 30일 일요일

새언약 유월절을 지키는 하나님의교회




예수님께서 재림 하실때에는 이 세상에 믿음을 볼 수 없다고 하셨다.
믿음이 없는 세상에서 재림과 동시에 심판이 이루어진다면 이 세상에 구원받을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눅 18:8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속히 그 원한을 풀어 주시리라 그러나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나 하시니라

믿음이 없다면 모두다 멸망이다. 이렇게 교회가 많은데 믿음이 없단 말인가?
믿음이 있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세워주신 하나님의 법을 지키는 것이고
믿음이 없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세우지 않은 불법을 행하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에게 하나님의 법을 알려주시고자 재림 그리스도께서 오시어 새언약을 세워
주신 것이다.
새언약 유월절을 지키는 교회는 하나님의교회 뿐입니다.

히 9:28 이와 같이 그리스도도 많은 사람의 죄를 담당하시려고
단번에 드리신바 되셨고 구원에 이르게 하기 위하여
죄와 상관 없이 자기를 바라는 자들에게 두번째 나타나시리라



슬피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하나님의교회>



도대체 얼마나 슬프고 분통이 터지는 경우에 ‘슬피 울며 이를 간다’는 표현을 쓰게 될까. 교활한 자의 계략에 빠져 억울하게 누명을 쓰고, 말도 안 되는 형벌까지 당한다면 억울하고 분통이 터져서 이를 갈게 될까. 평범하게 살아가는 사람들로서는 이해가 가지 않는, 이런 상황에 대해 예수님께서는 성경을 통해 설명해주셨다.


예수께서 들으시고 기이히 여겨 좇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스라엘 중 아무에게서도 이만한 믿음을 만나보지 못하였노라 또 너희에게 이르노니 동서로부터 많은 사람이 이르러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함께 천국에 앉으려니와 나라의 본 자손들은 바깥 어두운 데 쫓겨나 거기서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 (마태복음 8:10~12)


가버나움 지역의 한 백부장은 예수님께서 육체로 오신 하나님이라는 것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예수님께서는 백부장의 믿음을 기뻐하셨다. 반면 선민사상에 사로잡혀 당연히 구원받으리라 자부했던 바리새인들의 결과는 달랐다. 오래도록 여호와 하나님만을 섬겨온 그들의 눈에 예수님은 사람 되어 자칭 하나님이라고 신성모독을 하는 몹쓸 사람으로 비쳐졌기 때문이다. 결국 예수님을 배척했던 그들의 결과는 바깥 어두운 곳에 쫓겨나 이를 가는 불쌍한 자가 되었다. 또 다른 예를 보자.


인자가 그 천사들을 보내리니 저희가 그 나라에서 모든 넘어지게 하는 것과 또 불법을 행하는 자들을 거두어 내어 풀무불에 던져 넣으리니 거기서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 (마태복음 13:41~42)


이들은 또, 왜 울며 이를 갈게 되었을까. 만약 그들이 불법이라는 것을 알고 행했다면 슬프지도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불법인지도 모른 채 하나님을 올바로 섬기는 길인 줄 알고 행했을 모든 것이 불법이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심판하시고 경에 기록된 대로 풀무불에 던져넣으셨다.


올바른 길인 줄 알고 달려갔던 그들의 심정이 얼마나 억울했을까. 차라리 일요일에 남들처럼 마음껏 놀기라도 했다면 억울함이 덜하지는 않았을까. 하나님을 믿는다는 명목 아래 즐기고 싶은 모든 것도 자제하며 살았다. 그런데 그 결과가 풀무불이다. 너무도 억울하고 분통이 터져 이를 갈게 됐으리라.


결국 이들이 슬피 울며 이를 갈게 되는 원인은 육체로 오시는 하나님을 믿지 못해서, 불법인 줄도 모른 채 불법을 행해서 초래한 결과임을 알 수 있다. 혹시 재림하신 그리스도 안상홍님을 ‘사람 되어 하나님이라 한다’며 받아들이지 못하거나, 하나님의 계명은 버리고 사람의 계명인 일요일예배와 크리스마스, 십자가 숭배 등 불법을 행하고 있다면 당장 그 길에서 돌이켜야 한다. 그 길의 끝은 어둡고, 슬픔으로 가득하며, 억울하고 원통하고 분하여 이를 갈게 되는 곳이기 때문이다.

재림하신 그리스도 안상홍님과 모든 하나님의 계명인 안식일 및 3차의 7개 절기를 지키는
곳은 하나님의교회뿐이다.





출처 : 패스티브 닷컴



2014년 3월 28일 금요일

기도 -- 하나님의교회


항상 어머니 하나님께서 우리의 영원한 생명을 위해 두손 모아 기도해주십니다.
어머니 하나님을 의지하면 기도의 응답을 받을 수 있습니다.


이 시대 요구하는 믿음 - 하나님의교회



오순절 이후, 성령을 받은 사도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증거하며 전도하기 시작했다. 이에 믿고 예수께 나아오는 무리가 많아졌고, 병든 사람과 귀신들린 자까지 고침을 입어 제자들의 가르침을 따르는 자들이 더욱 많아졌다.


이 광경을 보고만 있을 수 없었던 유대교 지도자들은 사도들을 잡아 옥에 가두었으나,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옥에서 탈출할 수 있었다. 사도들은 다시 회중들에게 나아가 예수 그리스도를 전했다. 이에 유대교 지도자들은 크게 노했고 급기야 사도들을 죽이려고 했다(사도행전 5:33). 이때 율법학자 가말리엘이 나섰다.


이스라엘 사람들아 너희가 이 사람들(사도)에게 대하여 어떻게 하려는 것을 조심하라 이전에 드다가 일어나 스스로 자랑하매 사람이 약 사백이나 따르더니 그가 죽임을 당하며 좇던 사람이 다 흩어져 없어졌고 그 후 호적할 때에 갈릴리 유다가 일어나 백성을 꾀어 좇게 하다가 그도 망한즉 좇던 사람이 다 흩어졌느니라 이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이 사람들을 상관 말고 버려두라 이 사상과 이 소행이 사람에게로 났으면 무너질 것이요 만일 하나님께로 났으면 너희가 저희를 무너뜨릴 수 없겠고 도리어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가 될까 하노라 (사도행전 5:35~39)


가말리엘은 사도 바울이 그리스도교로 개종하기 전 그에게 율법을 가르친 스승이었다. 주후 25-50년까지 이스라엘 민족에게 성경과 유대교신학을 가르친 학자로서, 당시 유대사회에 많은 영향력을 끼쳤던 인물이다.


가말리엘은 ‘드다 사건’과 ‘유다 사건’을 예로 들며 당시 사도들을 죽음으로 몰아가려 했던 무리에게 훈계했다. ‘드다’는 스스로를 위대한 인물인 것처럼 선전하던 자로, 당시 그를 따르는 사람들이 약 사백 명이나 됐는데 그가 죽고 난 뒤 좇던 사람이 다 흩어졌다. ‘유다’는 당시 시리아 총독인 구레뇨가 인두세를 걷기 위해 인구조사를 실시하던 중, 백성들을 선동하여 “로마에 세금을 바치는 자는 신령한 하나님의 백성이 아니다”라고 하면서 반란을 일으켰던 사람이다.


가말리엘은 과거에 일어났던 두 사건을 열거하며, “사도들이 전하는 것도 이와 같은 것이면 스스로 망할 것이고, 하나님께로부터 난 복음이라면 도리어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가 될까 염려스럽다”며 사도들의 처벌에 대해 신중할 것을 요구했다.


당시 회중 앞에서 이렇게 발언한다는 것은 굉장히 어려운 일이었다. 유대 지도자들이 틈만 나면 사도들을 위협하고 이단으로 몰고 비방하고 죽이려고 혈안이 돼 있던 시대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가말리엘은 시대의 분위기에 굴하지 않았다. 오히려 사건의 진상을 밝히지도 않고 무조건 사도들을 이단시하는 지도자들의 잘못을 지적했다. 가말리엘의 이 행적이 우리가 주의 깊게 살펴봐야 할 부분이다.


성령과 신부가 말씀하시기를 오라 하시는도다 듣는 자도 오라 할 것이요 목마른 자도 올 것이요 또 원하는 자는 값없이 생명수를 받으라 하시더라 (요한계시록 22:17)


성경은 생명수, 즉 구원을 주시는 분이 성령과 신부라고 분명히 기록하고 있다. 그러나 오늘날 종교 지도자들은 성경대로 오신 성령과 신부를 배척하며 하나님의교회를 이단으로 몰고 비방하고 있다. 2천 년 전 유대교 지도자들처럼 말이다.


우리는 종교 지도자들이 퍼트려놓은 유언비어에 같이 휩쓸리는 것이 아니라 가말리엘과 같은 신중함과 올바른 판단이 요구된다. 도리어 성경을 믿지 못하여 성령과 신부를 비방하는 자들의 잘못을 바르게 지적하는 용기가 필요하다.


사람으로부터 난 것은 결국 망하게 되고, 하나님께로부터 난 것은 결단코 무너지지 않는다. 2천 년 전 유대인들이 그토록 핍박했던 하나님의교회는 무너지지 않았다. 이유는 간단하다. 하나님의교회는 하나님께서 세우신 교회이기 때문이다.


출처: 패스티브 닷컴

2014년 3월 27일 목요일

사망사슬과 구원사슬<하나님의교회,새언약유월절>



최종 사망에서 구원사슬을 새 언약 유월절로 하나님께서는 주시고 계신다.
새 언약 유월절을 지키는 교회는 하나님의교회 뿐입니다.



새 이름을 알아야 하는 이유<하나님의교회>



누구나 나름대로 삶의 목적을 이루고자 노력한다. 마찬가지다. 그리스도인이 이루어야 할 목적이 있다면 단연 ‘구원’이다(베드로전서 1:9). 주목할 점은 구원은 그냥 얻어지는 것이 아니고, 반드시 거쳐야 할 첫 번째 필수과정이 있다. 바로 침례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기성교단에서는 이 의식을 불법적으로 행하고 있다.


예수께서 나아와 일러 가라사대 하늘과 땅과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지키게 하라 (마태복음 28:18~20)


성령시대에 살고 있는 성도들이 반드시 따라야 할 대원칙이 존재한다. 그것은 성부시대와 성자시대 그리고 성령시대 구원자의 ‘이름’이 있다는 사실과 그 이름으로 침례를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성부시대의 구원자 이름은 여호와다(이사야 43:11). 성자시대의 구원자 이름은 예수다(사도행전 4:11~12). 그렇다면 성령시대의 구원자 이름은 무엇인가. 이런 질문을 받게 되면 상당히 놀라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성령시대 구원자 이름에 대해서 금시초문이기 때문이다.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감추었던 만나를 주고 또 흰 돌을 줄 터인데 그 돌 위에 새 이름을 기록한 것이 있나니 받는 자밖에는 그 이름을 알 사람이 없느니라 (요한계시록 2:17)


성령시대 구원자의 이름은 당연히 성자시대 구원자이셨던 ‘예수’가 아닌 전혀 새로운 이름이다. 만약 성령의 이름을 모른다고 해서 그 이름을 거부하거나 무시하고 아무렇게나 부적절한 침례를 준다면, 결과가 어떻게 될지 심사숙고해보면 소름 끼칠 일이 아닐 수 없다.


우리가 새 이름을 알아야 할 이유는, 우리의 구원과 영생이 걸려 있는 중대한 요소이기 때문이다. 단언컨대 이름을 빼고 직함만 부르면서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노라’는 방식으로 100번을 준다 한들, 그것은 결국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밖에 되지 않는다는 것을 분명하게 밝혀두고자 한다.

그래서 하나님의교회에서는 성령시대 구원자이신 예수님의 새 이름으로 침례를 준다.

출처: 패스티브 닷컴


2014년 3월 25일 화요일

다시 죽지 않은다는 말씀에 위배된다는 거짓 주장<하나님의교회>



반대자들은 "예수님께서 다시 죽지 않는다고 하셨는데 안상홍님께서는 작고하셨으므로
믿을 수 없다"고 주장한다. 이 주장이 왜 거짓인지 살펴봅시다.

롬 6:9 이는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사셨으매 다시 죽지 아니하시고 사망이 다시
그를 주장하지 못할 줄을 앎이로다

그 말씀이 어떠한 경우에도 그리스도께서 죽으시는 일이 없어야 한다는 뜻인가?
만일 그렇게 생각한다면 다음 말씀은 어떻게 생각하는가?

마 6:5~6 또 너희가 기도할 때에 외식하는 자와 같이 되지 말라 저희는 사람에게 보이려고
회당과 큰 거리 어귀에 서서 기도하기를 좋아하느니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저희는 자기 상을 이미 받았느니라 너는 기도할 때에 네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은밀한
중에 계신 네 아버지께 기도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

이 말씀도 문자 그대로만 이해라려고 한다면 우리는 기도할 때에 오직 아무도 없는
골방에서만 해야 한다. 즉 교회에 모여 함께 예배드릴 수 없는 것이다. 그것이 이 말씀을
올바로 이해한 것인가? 아니다.

롬 6:9의 말씀도 마찬가지이다. 이 말씀은 신령한 몸으로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다시
죽으실 수 없다는 뜻이다. 우리도 나중에 부활하면 그와 같은 몸이 될 것이다(빌3:21)

눅 20:36 저희는 다시 죽을 수도 없나니 이는 천사와 동등으로 부활의 자녀로서 하나님의
자녀임이니라

따라서 롬 6:9은 어디까지나 신령한 몸으로 계시는 예수님에 관한 말씀일 뿐이다.
그러므로 신령한 몸으로 계시던 예수님께서 다시 육체로 오시면 얼마든지 즉으실 수 있고,
그것은 이 말씀에 위배되지 않는다.

그러므로 신령한 몸이 다시 죽지 않는다는 말씀을 왜곡하여 육체로 오신 재림 그리스도를
부정하는 주장은 잘못된 것이다.
그래서 모든 성경의 예언따라 마지막 시대에는 반드시 하나님께서 육체로 오셔서 죽으시는
일이 있어야 한다.
이러한 성경의 예언을 따라 안상홍님(하나님의교회)께서는 37년 동안 복음을 전하시고
돌아가셨다.


옳은 데로 돌아오게 한 자<하나님의교회>



지혜 있는 자는 궁창의 빛과 같이 빛날 것이요 많은 사람을 옳은 데로 돌아오게 한 자는 별과 같이 영원토록 비취리라 (다니엘 12:3)


다니엘 선지자는 하나님께 받은 계시의 마지막에 이 글을 기록했다. 다니엘 12장 내용은 ‘끝 날’에 대해 알려주고 있으며 이는 하나님을 믿는 신앙인들에게 전도의 궁극적인 의미를 심어 준다. ‘많은 사람을 옳은 데로 돌아오게 한 자는 별과 같이 영원토록 비췬다’는 이 말씀으로 믿음의 길을 걸어가는 성도들은 되도록이면 많은 사람을 옳은 곳으로 돌아오게 하기 위해 자신도 옳은 길을 걸어가며 주위에 옳지 못한 일을 행하는 사람들을 옳은 곳으로 인도하기 위해 애를 쓴다.


그런데 여기서 두 가지 간과할 수 없는 내용이 있다. 과연 옳은 곳은 어디이며 옳은 행동은 무엇일까.


여호와는 은혜로우시며 의로우시며 우리 하나님은 자비하시도다 (시편 116:5)


여호와께서 시온을 택하시고 자기 거처를 삼고자 하여 이르시기를 이는 나의 영원히 쉴 곳이라 내가 여기 거할 것은 이를 원하였음이로다 (시편 132:13~14)


온전한 의로움은 하나님에게만 있다. 해서 옳은 곳은 하나님께서 계신 곳이다. 그런데 그 하나님께서 시온을 택하시고 거처를 삼고자 하셨으니 다니엘 선지자가 말한 ‘옳은 데’는 곧 ‘시온’이 된다. 즉 다니엘 12장의 말씀은 많은 사람을 시온으로 돌아오게 하는 자는 하늘의 별과 같이 영원토록 비췬다는 뜻이다.


또한 옳은 행동은 시온에서 이루어지는 모든 행위이다. 시온은 어떤 곳인가.


우리의 절기 지키는 시온성을 보라 네 눈에 안정한 처소된 예루살렘이 보이리니 그것은 옮겨지지 아니할 장막이라 그 말뚝이 영영히 뽑히지 아니할 것이요 그 줄이 하나도 끊치지 아니할 것이며 (이사야 33:20)


시온은 하나님의 절기를 지키는 곳이다. 하나님의 절기에는 3차로 나뉜 7개의 절기가 있다. 유월절로 비롯된 일곱 가지 절기는 일 년 동안 지켜진다. 하나님의 절기의 시작을 알리는 유월절조차 모르면서 의로움을 논할 수는 없다. 많은 사람을 옳은 데로 전도하고 싶다면 시온이 어디인지, 유월절을 어떻게 지키는 것인지 먼저 알아봐야 할 것이다.

 하나님의 절기를 지키는 교회는 오늘날 하나님의교회뿐이다.

출처 : 패스티브 닷컴

2014년 3월 16일 일요일

@@성장 요소@@<새언약 유월절>



토지를 기름지게 하고 생산력을 높이며 식물의 생장을 촉진시키는 것이 있다. 비료다. 비료는 빛, 물, 흙과 함께 작물이 생육하기 위해 없어서는 안 될 필수적인 요소로 질소, 인, 칼륨이 이에 속한다. 비료의 3요소라고도 한다.


질소는 잎이나 줄기 등의 생장에 도움을 주고, 인은 꽃이나 열매 뿌리 등의 발육을 촉진시키며, 칼륨은 각종 병충해 등에 저항성을 향상시킨다. 흥미로운 점은 이러한 요소 중 어느 하나만 강조되거나 어느 하나가 부족하게 되면 작물이 생장하는 데 부작용을 일으키게 된다는 것이다. 즉 세 가지 요소를 모두 골고루 갖추어야 품질 좋은 작물이 탄생하는 것이다.


올바른 신앙생활도 이와 일맥상통하는 면이 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신앙이 어느 한쪽으로만 치우치지 않도록 하기 위해, 우리의 고른 믿음의 성장을 위해 필요한 요소들을 성경에 기록해 두셨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고난을 받기 전에 너희와 함께 이 유월절 먹기를 원하고 원하였노라 ··· 또 떡을 가져 사례하시고 떼어 저희에게 주시며 가라사대 이것은 너희를 위하여 주는 내 몸이라 너희가 이를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 하시고 저녁 먹은 후에 잔도 이와 같이 하여 가라사대 이 잔은 내 피로 세우는 새 언약이니 곧 너희를 위하여 붓는 것이라 (누가복음 22:15~20)


(예수께서) 이르시되 우리가 다른 가까운 마을들로 가자 거기서도 전도하리니 내가 이를 위하여 왔노라 하시고 이에 온 갈릴리에 다니시며 ··· (마가복음 1:38~39)


우리의 올바른 신앙성장을 위해 예수님께서 본보여주신 것은 ‘유월절을 지키는 것’과 ‘전도하는 것’이다. 물론 여기에는 믿음이 바탕이 되어야 한다. 즉 믿음을 바탕으로, 새 언약 유월절을 지키고 전도하는 것이 우리의 구원을 위한 중요한 요소가 되는 셈이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나를 사랑하는 자는 내 계명을 지킨다” 하시며 친히 유월절을 지키시며 전도하는 본을 보이셨던 것이다(요한복음 15:19).


그런데 오늘날 교회들은 어떤 모습인가. 믿음만을 강조하거나 전도만을 강조하거나 엉뚱한 일요일 예배를 지킨다. 예수님께서 알려주신 계명은 어디에도 없다. 이는 한쪽으로만 치중되어 작물이 온전하게 자라지 못하게 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천국의 알곡작물이 되고자 한다면 반드시 세 가지 요소인 믿음, 계명, 전도가 서로 어우러져야 함을 잊지 말자.




!!겸손<어머니 하나님,하나님의교회>





오늘날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시는 어머니 하나님을 깨닫는 것도 자기의 고집과
생각을 버리고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살피시면 깨달을 수 있습니다.

계 22:17 성령과 신부가 말씀하시기를 오라 하시는도다 듣는 자도 오라 할 것이요 목마른 
자도 올 것이요 또 원하는 자는 값없이 생명수를 받으라 하시더라

계 21:9~10 일곱 대접을 가지고 마지막 일곱 재앙을 담은 일곱 천사 중 하나가 나아와서
내게 말하여 가로되 이리 오라 내가 신부 곧 어린 양의 아내를 네게 보이라라 하고 성령으로
나를 데리고 크고 높은 산으로 올라가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는 거룩한 성 예루살렘을 보이니

갈 4:26 오직 위에 있는 예루살렘은 자유자니 곧 우리 어머니라

영원한 생명을 주시는 어머니 하나님을 만나시려면 하나님의교회로 오세요^^


##나에게 주어진 것<하나님의교회>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새언약 유월절에 참예함으로 축복주셨습니다.
새언약 유월절을 하나님의교회에서만이 지킵니다.


마태복음 26장 17-19절
무교절의 첫날에 제자들이 예수께 나아와서 가로되 유월절 잡수실 것을 우리가 어디서 예비하기를 원하시나이까 가라사대 성안 아무에게 가서 이르되 선생님 말씀이 내 때가 가까왔으니 내 제자들과 함께 유월절을 네 집에서 지키겠다 하시더라 하라 하신대 제자들이 예수의 시키신대로 하여 유월절을 예비하였더라


마태복음 26장 26-28절
저희가 먹을 때에 예수께서 떡을 가지사 축복하시고 떼어 제자들을 주시며 가라사대 으라아먹 이것이 내 몸이니라 하시고 또 잔(포도주)을 가지사 사례하시고 저희에게 주시며 가라사대 너희가 다 이것을 마시라 이것은 죄 사함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



십자가는 섬김의 대상??<하나님의교회>


오늘날 많은 교회들이 십자가를 상징으로 삼고 교회 탑 위에나 내부에 두고 있으며
교인들은 이를 섬김의 대상으로 여기고 있다.
그러나 십자가는 하나님께서 만들지 말라고 하신 우상 중의 하나일 뿐입니다.

출 20:4~5 너를 위하여 새긴 우상을 만들지 말고 또 위로 하늘에 있는 것이나 아래로
땅에 있는 것이나 땅 아래 물 속에 있는 것의 아무 형상이든지 만들지 말며 그것들에게
절하지 말며 그것들을 섬기지 말라

레 26:1 너희는 자기를 위하여 우상을 만들지 말지니 목상이나 주상을 세우지 말며 너희 
땅에 조각한 석상을 세우고 그에게 경배하지 말라 나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임이니라


하나님께서는 어떤 형상이든지 만드는 것은 괜찮고, 절하고 섬기지만 말라고 하셨습니까? 아닙니다. 아무 형상이든지 만들지도 말라고 하셨다.
십자가도 마찬가지입니다.
사실상 십자가를 교회의 상징으로 세워 섬기라는 말씀은 성경에 없습니다.
예수님 이후 수세기 동안 교회에서는 십자가를 만들지 않았다.

Baker`s 신학사전, 491쪽
그리스도인들이 십자가를 기독교에 대한 상징으로서 공식적으로 사용하게 된 것은 
콘스탄틴 시대부터였다. 초대교인들에게 십자가는 말만 들어도 몸서리치는 것이었으므로
십자가를 심미적으로 미화시킬 위험성은 전혀 없었다.

이처럼 십자가는 콘스탄틴 시대에 기독교가 공인되어(313년) 교회가 세속화되면서
교회 안에 자리잡게 된 우상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교회에서는 십자가를 섬기지 않고 구원의 약속이 담겨있는 새언약 유월절을
지킵니다.



2014년 3월 3일 월요일

ABC와 호흡==성령시대 새이름 기도



응급실은 진료시간 내 또는 시간 외에 발생하는 응급환자의 즉각적인 치료를 위해 운영되고 있다. 응급실 의료진들은 환자의 증상을 신속하게 진단하고, 최단시간 내에 증상에 맞는 응급처치를 수행한다. 또 응급처치 후 추가적인 치료가 필요하다고 판단될 때는 관련 진료과로 인계해 준다.


이러한 응급의료는 충분한 지식과 숙련된 기술을 지닌 의사나 간호사에 의해서만 이루어져야 한다. 전문가의 적절한 응급처치를 받은 경우에는 환자의 증세가 호전되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 생명을 잃을 수도 있다. 그래서 응급실에서는 ‘ABC조치’를 통해 환자의 응급 여부를 판단하고 치료를 진행한다. A는 Airway, 즉 환자의 기도가 확보되어 있는지, B는 Breathing, 호흡 곤란을 겪고 있는지, C는 Circulation, 혈액 순환에 문제가 있는지 확인하는 것이다.


응급실에서 가장 위급한 환자는 호흡을 멈춘 환자다. 호흡은 생명과 직결되기 때문이다. 호흡에 문제가 있거나 호흡을 멈추면 몸의 모든 장기가 제 기능을 상실하게 된다. 또 뇌세포와 혈액에 산소공급이 중단되어 4분 내에 의식을 잃을 수 있으며 4분 이상이 지나면 뇌가 손상되고 10분이 경과하면 사망에 이를 수 있다.


결국 응급ABC조치는 환자의 생명을 살리기 위한 최선의 방법으로서, 환자의 호흡여부가 가장 큰 핵심이다. 우리 영혼도 마찬가지다. 자칫 영혼의 호흡을 가볍게 여겼다가는 생명이 완전히 중단될 수 있다. 그렇다면 우리의 영혼이 호흡하는 방법은 무엇일까. 기도다. 기도를 제대로 하지 않는다면 호흡을 멈추고 있는 상태다. 그 기간이 길어질 경우 영혼의 생명에 치명적인 결과를 가져오게 될 것이다. 그래서 성경은 ‘쉬지 말고 기도하라’고 강조했던 것이다(데살로니가전서 5:17).


그런데 성경은 각 시대마다 누구에게 기도해야 하는지 그 대상을 구체적으로 알려주고 있다.


내가 여호와의 이름으로 기도하기를 여호와여 주께 구하노니 내 영혼을 건지소서 하였도다 (시편 116:7)


성부시대에 다윗은 여호와의 이름으로 기도했다. 그리고 영혼의 생명을 얻을 수 있었다. 그렇다면 성자시대가 되어서도 여호와의 이름으로 기도했을까.


지금까지는 너희가 내 이름으로 아무것도 구하지 아니하였으나 구하라 그리하면 받으리니 너희 기쁨이 충만하리라 (요한복음 16:24)


이 말씀은 예수님께서 오시기까지 예수님의 이름이 아닌 다른 이름으로 기도를 했다는 뜻이다. 그때까지 누구의 이름으로 기도를 해왔는가. 성부시대 구원자이신 여호와 하나님께 기도를 드렸다. 그러나 이제는 성자시대가 되었고 예수님께서 구원자로 오셨으니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라는 뜻이다.


현재는 2014년, 성령시대다. 성부시대의 여호와, 성자시대의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해서는 응답을 받을 수 없다는 뜻이다. 성부시대에서 성자시대로 바뀔 때 기도하는 대상이 바뀐 것처럼 성령시대에도 기도하는 대상이 바뀌었으며 그분을 찾는 것이 관건이다.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감추었던 만나를 주고 또 흰 돌을 줄 터인데 그 돌 위에 새 이름을 기록한 것이 있나니 받는 자밖에는 그 이름을 알 사람이 없느니라 (요한계시록 2:17)


··· 보배로운 산 돌이신 예수에게 나아와 (베드로전서 2:4)



성령시대의 구원자는 예수님의 또 다른 이름, 즉 새 이름이다. 새 이름으로 기도하는 것이 제대로 된 영혼의 호흡을 하는 것이며, 기도의 응답과 영원한 생명을 받을 수 있는 방법이다. 호흡에 문제가 생기면 얼마 안되어 사망에 이른다. 기도는 생명을 유지하는 최선의 길이다.


출처: 패스티브닷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