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9월 27일 금요일

엘로힘 하나님이란?<하나님의교회>




하나님은 한분으로 롤로계시며 능하신 전능자시다.
그런데 하나님의교회에서는 한 분 하나님을 부인하지는 않으면서 아버지 하나님과
어머니 하나님이 계신다고 믿고 전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는 비밀이요, 감추어진 보화와도 같다.
한 분이시지만 항상 엘로힘(하나님들)으로 역사하신 하나님의 깊은 뜻을 아는 자가
보화를 얻은 자라 하겠다.
오늘날 대부분의 기독신앙은 이 비밀을 아직까지 발견치 못하고 찾아헤메며 미스터리로
분류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교회에 임하신 재림 그리스도 안상홍님과 어머니 하나님께서 이 모든
비밀을 이미 우리들에게 알리셨습니다.
오래동안 풀리지 않던 성서의 미스터리에 대해 알고 싶은 분들은 하나님의교회에 오세요^^




십자가는 우상이 아니다?? <하나님의교회>




오늘날 하나님을 믿는 대부분의 교회에서는 십자가를 교회의 상징으로 세우고 있습니다.
초대교회부터 하나님의교회에서는 십자가를 세우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십자가는 분명 우상숭배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초대교회 당시 십자가는 사형수를 처형하는 사형도구였습니다.
초대교회 당시에는 십자가 소리만 들어도 몸서리를 쳤다고 합니다.
교회 상징이 아니라 분명 하나님께서 금하신 우상입니다.
십자가 상들은 그리스도교 시대보다 훨씬 전에 종교나 그외의 상징들로 사용되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이 십자가를 기독교에 대한 상징으로서 공식적으로 사용하게 된 것은
콘스탄틴 시대부터였다.
하나님의 교회에서는 성경대 행하고 있고 그래서 오늘날 구원은 오직 하나님의교회에서만
있습니다.



2013년 9월 26일 목요일

재림주도 오직 예수?<하나님의교회>



안상홍님께서는 마지막 때도 ‘오직 예수’라는 이름으로 구원받는다고 하셨을까.
하나님의교회를 비방하는 몇 명의 사람들은 “하나님의교회에서 재림 그리스도로 믿는 안상홍님께서도 예수라는 이름으로만 구원받을 수 있다고 가르쳤다”며 안상홍님께서 쓰신 책자 중 일부분을 제시한다.

그런데 말세에는 거짓 그리스도가 많이 나온다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오늘날에는 거짓 그리스도가 일어나 ‘내가 그리스도’라고 하는 사람이 많이 나오고 있다. 그러나 예수 초림 때나 마지막 때나 예수님의 이름으로만이 구원을 받게 되는 것이다. (하나님의 비밀과 생명수의 샘, 12장 성삼위일체에 대하여)

그렇기 때문에 ‘안상홍’이란 이름으로 구원받길 바라는 하나님의교회는 자신들이 믿는 구원자의 말씀조차 따르지 않는 단체라는 주장이다. 과연 그들의 주장처럼 하나님의교회가 안상홍님의 가르침을 따르지 않는 것일까.

예수님은 승천하셨다가 다른 이름으로 오시는 것을 가리켜 내가 가서 보혜사를 보내겠다고 하신 것이다. (하나님의 비밀과 생명수의 샘, 13장 성령에 대하여)

안상홍님께서 쓰신 동일 책자의 다른 부분이다. 성령 곧 재림 예수님에 대한 설명인데 여기에서 안상홍님께서는 분명 예수님께서 ‘다른 이름’으로 오신다고 설명하셨다. 예수가 아닌 다른 이름이다. 어떻게 된 것일까. 어떨 때는 ‘예수님의 이름으로만 구원받을 수 있다’고 하고 또 어떨 때는 ‘예수님의 다른 이름이 있다’고 하는 것일까. 예수님의 다른 이름이 있다는 것은 그 이름으로 구원을 주시겠다는 의미다. ‘누구든지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니(요엘 2:32)’라는 말씀처럼 예수님의 다른 이름을 주시는 것은 당연히 그 ‘다른 이름’을 믿고 불러서 구원을 받으라는 뜻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왜 안상홍님께서는 마지막 때도 예수님의 이름으로만 구원이 있다고 하신 것일까. 이는 말씀의 주제가 성삼위일체를 설명하는 부분 중 일부라는 사실을 알면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성자이신 예수님의 이름이나 성령이신 예수님의 다른 이름이나, 모두 동일한 분이신 예수님의 이름이다. 요한계시록의 기록을 보자.


이기는 자는 내 하나님 성전에 기둥이 되게 하리니 그가 결코 다시 나가지 아니하리라 내가 하나님의 이름과 하나님의 성 곧 하늘에서 내 하나님께로부터 내려오는 새 예루살렘의 이름과 나의 새 이름을 그이 위에 기록하리라 (요한계시록 3:12)


여기서 ‘나’는 예수님으로, 예수님의 ‘새 이름’은 곧 예수님의 ‘다른 이름’이다. 따라서 다른 이름으로 오신다고 해도 성경의 증거대로 오신다면 그분의 이름은 예수님의 이름이다. 예수님과 동일한 분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하나님의교회는 ‘안상홍’님의 이름으로 구원받는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성경의 모든 예언과 성취를 통해서 ‘안상홍’이란 이름이 예수님의 새 이름 곧 다른 이름이란 사실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그들이 제시한 안상홍님의 말씀은 ‘성삼위일체’에 대한 설명의 일부로, 마지막 때도 예수의 이름으로만 구원받는다는 부분은 ‘예수라는 이름의 뜻은 구원자라는 뜻’이란 제하의 결론에 해당한다.



예수라는 이름의 뜻은 구원자라는 뜻 


구약성경에는 여호와 외에는 구원자가 없다고 여러 번 기록되어 있다. 


사 43장 11절 나 곧 나는 여호와라 나 외에 구원자가 없느니라 하였으며 


사 45장 21절 … 나 외에 다른 신이 없나니 나는 공의를 행하며 구원을 베푸는 하나님이라 나 외에 다른 이가 없느니라 하였으며, 호세아의 글에도 


호 13장 4절 그러나 네가 애굽 땅에서 나옴으로부터 나는 네 하나님 여호와라 나밖에 네가 다른 신을 알지 말 것이라 나 외에는 구원자가 없느니라 하였다. 


그러나 신약성경에는 예수님 외에는 구원자가 없다고 하였다. 


행 4장 11~12절 이 예수는 너희 건축자들의 버린 돌로서 집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느니라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 하였다. 그리고 


마 1장21절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였으니 예수라는 이름이 구원자라는 이름이다. 


그런데 말세에는 거짓 그리스도가 많이 나온다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오늘날에는 거짓 그리스도가 일어나 ‘내가 그리스도’라고 하는 사람이 많이 나오고 있다. 그러나 예수 초림 때나 마지막 때나 예수님의 이름으로만 구원을 받게 되는 것이다. 


이 글은 ‘각 시대마다 그 시대에 임하신 구원자의 이름을 불러야 구원받는다’와 ‘예수라는 이름은 구원자라는 뜻’이라는 중간 제목을 유의해서 봐야 한다. 성부시대 구원자는 여호와였고, 성자시대 구원자는 예수였다. 시대마다 구원자의 이름이 바뀐다는 특징이 있다. 거기에 예수님의 이름의 뜻은 구원자라고 했다.


그렇다면 ‘마지막 시대 예수님의 이름으로만 구원받게 된다’는 것은 무슨 의미겠는가. 마지막 시대에 오시는 구원자의 이름으로만 구원받게 된다는 뜻이다. 시대마다 구원자의 이름이 바뀐다고 했으므로 ‘예수’가 아닌 예수님의 다른 이름인 것이다. 그래서 요한계시록 3장에 ‘예수님의 새 이름’이 있다고 한 것이 아니겠는가.


하나님의교회가 마지막 시대인 오늘날은 안상홍님의 이름으로만 구원받을 수 있다고 주장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마지막 시대 구원자는 안상홍님이기 때문에, 오직 안상홍님의 이름으로만 구원받을 수 있는 것이다. 마치 성자시대 때 아무리 여호와 이름을 불러도 구원받을 수 없었던 이치와 같다.


이처럼 구원자를 알기 위해 힘쓰기보다 타 교회를 비방하는 데만 혈안이 되면 이런 곡해를 하게 된다. 저자의 의도와 달리 일부분만을 발췌해 제멋대로 해석하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행동인지 알아야 할 것이다. 그 저자가 하나님이라고 한다면 그 죄의 결과가 얼마나 크겠는가(요한계시록 22:18~19).

출처: 패스티브 닷컴

믿기만 하면 무조건 구원??<하나님의교회>




믿기만 하면 무조건 구원받는다. 따라서 유월절을 지킴으로써 구원받는 것이 아니다라고
주장한다. 
반대로 하나님의교회에서는 믿기만 하면 무조건 구원받는것이 아니라 유월절을 지켜야 구원받는다라고 말한다. 과연 어디가 진짜일까?

1.침례도 구원과 무관한가?
믿음으로 구원받는 것은 틀림없다. 믿음 없이는 구원받을 수 없다. 그러나 구원에는 
믿음뿐만 아니라 믿음으로 이루어지는 행함도 있어야 한다.

막 16:16 믿고 세례를 받는 사람은 구원을 얻을 것이요 믿지 않는 사람은 정죄를 받으리라

이 말씀을 볼 때, 믿기만 하면 침례를 받지 않아도 구원받을 수 잇겠는가? 없다.
이처럼 구원에는 믿음으로 이루어져야 할 행함도 필요하다.

2. 나와 상관이 없느니라
예수님께서는 특정한 `행함`이 없으면 당신과 아무 상관이 없다고 하셨다.

요 13:8 베드로가 가로되 내 발을 절대로 씻기지 못하시리이다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가 
너를 씻기지 아니하면 네가 나와 상관이 없느니라

이 당시 베드로가 예수님을 안 믿고 있었는가? 아니다.
그는 이미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고 있었다(마 16:16).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께서는
그에게 `내가 너를 씻기지 아니하면 네가 나와 상관이 없느니라`고 하셨다. 
예수님과 상관없는 자가 어떻게 구원받을 수 있겠는가?
이처럼 구원받기 위해서 우리가 꼭 행해야 할 일들이 있다.
그 대표적인 예가 하나님의교회에서 행하는 침례와 유월절이다.

3.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자가 구원받는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자가 구원을 받는다고 하셨다.

마 7:21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하나님의 뜻대로 믿는다고 생가만 하는 자가 천국에 들어간다고 하셨는가? 아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자가 천국에 들어간다고 하셨다. 
따라서 우리는 하나님의 뜻대로 행해야 한다. 
침례를 받는 것도 하나님의 뜻이고 유월절을 지키는 것도 하나님의 뜻이다.(눅 22:15)
그래서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교회는 오늘날 하나님의교회입니다.
그러므로 믿기만 하면 무조건 구원받고 유월절은 지킬 필요가 없다는                              저들의 주장은 거짓입니다.


2013년 9월 25일 수요일

초대교회가 모일 때마다 성찬식을 했다는 거짓 주장<새언약 유월절>



새언약 유월절 진리를 훼방하는 자들은 행 2:42, 행 20:7의 말씀을 인용하여 `초대교회가
유월절을 지키지 않고, 모일 때마다 성찬식을 했다`고 거짓 주장을 합니다.
성경을 통해 거짓임을 알아봅니다.

1. 모일 때마다 성찬식을 하는가?
모일 때마다 성찬식 하는 것이 성경적이라면, 개신교에서는 왜 모일 때마다 성찬식을 하지 않는가?
신약성경에 새언약 유월절에 성만찬을 한 기록은 많지만 아무 날에나 성만찬을 한 기록은
없다. 성경에 없는 것을 주장하는 것이 이단이다.

2. 행 2:42의 참뜻
행 2:42~46 서로 교제하며 떡을 떼며 기도함. 날마다 마음을 같이 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음식을 먹음

본문이 성찬식을 했다는 기록인가? 아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이 자주 만나 말씀을 연구하고 교제하며 주식인 떡을 떼고 기도에 힘썼다는
기록이다. 행 2:46의 모여서 식사한 것을 가리켜 성찬식을 했다는 주장은 진리를 훼방하기 위한 거짓 주장일 뿐이다.

3. 행 20:7의 참뜻
행20:7 안식 후 첫날에 떡을 떼려 하여 모임

이날은 매주 모임이 아닌 1년에 한 번 이쓴 부활절 예배이다.
왜냐하면 그날은 무교절 다믕에 오는 안식 후 첫날이기 때문이다(행20:6~7).
빌립보에서 무교절을 지킨 후 드로아로 가서 안식 후 첫날(일요일)에 떡을 뗀 것이지
떡과 포도주로 성만찬 한 것이 아니다.
성도들의 교제 차원에서 떡을 뗀 기록(행 2:42)이나 부활절에 떡 뗀 기록(행 20:7)을
가지고 모일 때마다 성찬식을 했다는 주장은 성경대로 새 언약 유월절을 지키지 않는
자신들의 비성경적인 행위를 변호해보려고 지어낸 거짓말일 뿐이다.


고전 11:20의 `주의 만찬`이 새언약 유월절이 아니라는 거짓 주장



새언약 유월절 진리를 훼방하는 자들은 고전 11;23을 인용하여 `본문에는 주의 만찬이라고
했지 새언약 유월절을 지키라고 하지 않았다`라고 주장하며, 또 `이 떡을 먹으며 이 잔을
마실 때마다`라고 말씀을 인용하여 `아무 때나 성찬식을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과연 이 주장이 옳을까요?

1. 주의 만찬을 언제 행하라고 하였는가?

고전 11:20~27 내가 너희에게 전한 것은 주께 받은 것이니 곧 주 예수께서 잡히시던 밤에 
떡을 가지사 축사하시고 ... 이 잔은 내 피로 세운 새 언약이니 이것을 행하여 마실 때마다
나를 기념하라 하셨으니 너희가 이 떡을 먹으며 이 잔을 마실 때마다 주의 죽으심을 오실
때까지 전하는 것이니라

`이 떡을 먹으며 이 잔을 마실 때마다`라는 말씀이 아무 때나 먹고 마시라는 뜻일까?
아니다. 주의 만찬은 언제 행해졌다고 하였는가? 바로 `예수님께서 잡히시던 밤`이다.

2. 예수께서 잡히시던 밤은 언제였는가?

새언약 유월절이다. `주의 만찬`으로 기록된 고전 11장과 `유월절`이라고 기록된 눅 22장을
비교해보자.

눅 22:7~20 저희가 나가 그 하시던 말씀대로 만나 유월절을 예비하니라 ... 내가 고난을 
받기 전에 너희와 함께 이 유월절 먹기를 원하고 원하였노라 ... 또 떡을 가져 사례하시고 
떼어 저희에게 주시며 가라사대 이것은 너희를 위하여 주는 내 몸이라 ... 잔도 이와 같이
하여 가라사대 이 잔은 내피로 세우는 새 언약이니 곧 너희를 위하여 붓는 것이라

고전 11장에서는 `주의 만찬`을 `떡과 포도주로 세워주신 새 언약`이라고 하였고, 
눅 22장에서는 `떡과 포도주로 세우신 새 언약`을 다름아닌 `유월절`이라고 하였다.
따라서 고전 11장의 `주의 만찬`은 예수께서 잡히시던 유월절 밤에 있었던 성만찬이고, 
아무 때나 행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께서 잡히시던 밤` 곧 유월절마다 행하여 그리스도의
죽으심을 기념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유월절`이라는 단어가 없다고 해서 `주의 만찬`은 새언약 유월절에 행하는 것이 아니라 아무 때나 행하는 성찬식이라는 주장은 비성경적인 거짓 주장이다.

새언약 유월절을 지키는 하나님의교회로 오셔서 영생축복 받으세요^^

 

2013년 9월 24일 화요일

신비로운 기적 새언약 유월절

신비로운 기적, 유월절


바이러스와 지진, 화산폭발, 태풍, 홍수, 폭설과 같은 자연재해 그리고 테러, 핵전쟁과 같은 인위적 재앙들 외에도 질병, 사고, 범죄 등 인류를 위협하는 재앙은 끊임없이 발생하고 있다. 여기에 소행성과의 충돌, 싱크홀 등 상상할 수 없었던 온갖 재앙의 요소들도 산재해 있다.


이에 사람들은 지하벙커를 마련하거나 비상식량과 비상물품을 준비하는 경우도 많다. 세계 각국에서도 대재앙에 대비해 자구책을 모색하고 있다. 영국은 멸종위기종의 유전자은행 설립을 준비 중이고, 미국은 인간을 포함한 지구상 동식물의 유전자 표본을 달에 보내는 계획을 추진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실제로 노르웨이령인 북극 스발바르제도의 한 섬에는 2006년 착공해 약 2년 동안 건설된 ‘최후의 날 저장고(doomsday vault)’라 불리는 국제종자저장고가 있다. 저장고는 지하 130m 깊이의 영구동토층에 있는데, 우리나라도 이곳에 벼, 보리 등 5천 점의 종자를 보냈다.


과연 이 방법들이 인류가 멸종되거나 지구가 멸망한 후에 문명을 복원할 수 있는 씨앗이 될 수 있을까. 재앙을 대비하는 데 있어 인류가 간과하고 있는 것이 있다. 이 시대 일어나고 있는 많은 재앙들이 성경의 예언에 근원하고 있다는 점이다. 성경은 이미 무수한 재앙들을 경고해 왔다. 그러나 하나님의 가르침을 따라 성경의 예언을 믿고 따르는 자들에게는 특별한 구원의 소식을 허락해 주셨다.






난리와 소란의 소문을 들을 때에 두려워 말라 이 일이 먼저 있어야 하되 끝은 곧 되지 아니하니라 또 이르시되 민족이 민족을, 나라가 나라를 대적하여 일어나겠고 처처에 큰 지진과 기근과 온역이 있겠고 또 무서운 일과 하늘로서 큰 징조들이 있으리라 (누가복음 21:9~11)


너희가 너희 하나님 나 여호와의 말을 청종하고 나의 보기에 의를 행하며 내 계명에 귀를 기울이며 내 모든 규례를 지키면 내가 애굽 사람에게 내린 모든 질병의 하나도 너희에게 내리지 아니하리니 나는 너희를 치료하는 여호와임이니라 (출애굽기 15:26)


··· 이것이 여호와의 유월절이니라 내가 그 밤에 애굽 땅에 두루 다니며 사람과 짐승을 무론하고 애굽 나라 가운데 처음 난 것을 다 치고 애굽의 모든 신에게 벌을 내리리라 나는 여호와로라 내가 애굽 땅을 칠 때에 그 피가 너희의 거하는 집에 있어서 너희를 위하여 표적이 될지라 내가 피를 볼 때에 너희를 넘어가리니 재앙이 너희에게 내려 멸하지 아니하리라 너희는 이날을 기념하여 여호와의 절기를 삼아 영원한 규례로 대대에 지킬지니라 (출애굽기 12:11~14)


구약시대, 하나님께서는 이집트에서 노예생활을 하던 이스라엘 민족을 해방시키시기 위해 이집트 전역에 열 가지 재앙을 내리셨다. 그중 마지막 열 번째 재앙을 내리실 때, ‘유월절’을 지켜 어린양의 피가 문에 발린 집에는 재앙을 내리지 않으셨다. 이는 재앙이 넘어가는 절기인 유월절의 유래가 되었다.


이르시되 내가 고난을 받기 전에 너희와 함께 이 유월절 먹기를 원하고 원하였노라 ··· 또 떡을 가져 사례하시고 떼어 저희에게 주시며 가라사대 이것은 너희를 위하여 주는 내 몸이라 너희가 이를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 하시고 저녁 먹은 후에 잔도 이와 같이 하여 가라사대 이 잔은 내 피로 세우는 새 언약이니 곧 너희를 위하여 붓는 것이라 (누가복음 22:15, 19~20)


신약시대에 이르러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살과 피를 상징하는 떡과 포도주로써 유월절 예법을 새롭게 세워주셨다(요한복음 6:53~55, 마태복음 26:26~18). 이스라엘 민족이 유월절을 지켜 재앙에서 구원받았던 것처럼 이제 하나님의 약속대로 새 언약의 유월절을 지킨 자들에게는 어떠한 재앙도 엄습할 수 없다. 예수님께서 지키기를 원하고 원하셨던 새 언약 유월절은 재앙에서 우리를 지켜주시는 거룩한 약속이요, 가장 확실한 대비책이다. 재앙이 임하는 순간, 유월절을 지킨 자들은 유월절의 신비를 체험하게 될 것이다.


천인이 네 곁에서, 만인이 네 우편에서 엎드러지나 이 재앙이 네게 가까이 못하리로다 (시편 91:7)

출처:패스티브 닷컴

사는법 = 새언약 유월절<하나님의교회>



하나님께서는 이 땅에 구원주시기 위해 사람으로 오셨습니다.
그렇다면 어떤 방법으로 구원을 주실까요?

누가복음 22장 19-20절
또 떡을 가져 사례하시고 떼어 저희에게 주시며 가라사대 이것은 너희를 위하여 주는 내 몸이라 너희가 이를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 하시고 저녁 먹은 후에 잔도 이와 같이 하여 가라사대 이 잔은 내 피로 세우는 새 언약이니 곧 너희를 위하여 붓는 것이라

예수님께서는 새언약 유월절에 당신의 희생의 피로 새 언약을 세우셨습니다.
새 언약에는 유월절 양으로 오셔서 우리 죄를 대신 지시고 희생하신 예수님의 희생의 
공로가 담겨 있습니다.
이 새언약 유월절이 우리가 사는 법입니다.
새언약 유월절이 왜 사는 법인지 예수님의 말씀을 통해서 알아봅시다.

요 6:53~54 예수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인자의 살을 먹지 아니하고 인자의 피를 마시지 아니하면 너희 속에 생명이 없느니라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영생을 가졌고 마지막 날에 내가 그를 다시 살리리니

예수님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시지 않으면 우리 안에 생명이 있다고 하였습니까? 아닙니다.
죄와 허물로 말미암아 우리 영혼이 죽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시면 무엇을 가졌다고 하였습니까? 영생입니다.
그러므로 죽었던 우리가 살기 위해서는 반드시 예수님의 살과 피를 먹고 마셔야 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시는 방법이 무엇이었습니까?
그것이 바로 새언약 유월절입니다.
그러므로 새언약 유월절은 사는 법이 확실합니다.

사는법인 새언약 유월절은 하나님의교회에서만이 지키고 있습니다.


2013년 9월 23일 월요일

하나님은 두 분이다<어머니 하나님>

구약성경의 원전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성경에는 ‘하나님’이 복수명사 ‘אֱלֹהִים (엘로힘)’으로 기록되어 있다. ‘하나님들’로 해석되는 이 표현은 구약성경 39권에 걸쳐 2500회 이상 등장한다. 하나님이 한 분이 아니라는 뜻이다. ‘엘로힘’이라는 이 수수께끼 같은 단어 속에는 어떤 비밀이 숨겨져 있는 것일까.

하나님들, 아버지 하나님과 어머니 하나님





하나님께서는 피조물인 사람의 형상을 통해 당신을 왜 복수의 하나님으로 표현했는지 알려주셨다.


하나님이 가라사대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창세기 1:26~27)


하나님께서는 당신을 모델로 하여 사람을 창조하셨는데,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셨다. 이는 남성적 형상의 하나님과 여성적 형상의 하나님 두 분이 존재한다는 의미다. 두 분의 하나님이 존재한다는 증거는 이뿐만이 아니다. 하나님께서는 창조사역을 하시며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자”고 말씀하셨다.

이 말씀 속에서도 한 분이 아닌 두 분, 즉 아버지 하나님과 어머니 하나님께서 존재한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성경은 온 세계를 통치하시는 하나님에 대해 항상 두 분의 하나님이 역사하셨음을 ‘엘로힘’과 ‘우리’라는 표현을 통해 증거하고 있다.


…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 자, 우리가 내려가서 거기서 그들의 언어를 혼잡케 하여 그들로 서로 알아듣지 못하게 하자 하시고 (창세기 11:1~7)


내가 또 주의 목소리를 들은즉 이르시되 내가 누구를 보내며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갈꼬 그때에 내가 가로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 (이사야 6:8)


오만한 인간들의 바벨탑 건설을 중단시키시는 역사를 행하시는 분도 두 분이다. 복음을 전할 사람들을 찾으시는 분도 한 분이 아니다. 이는 구원의 역사를 이끄시는 하나님이 늘 두 분이 존재했다는 증거다. 바로 아버지 하나님과 어머니 하나님이다.

하늘 가족의 대표, 아버지 하나님

대개는 “아버지는 한 분뿐이시니 곧 하나님이시로다(요한복음 8:41)”, “주도 하나요 믿음도 하나요 세례도 하나이요 하나님도 하나이시니 곧 만유의 아버지시라(에베소서 4:5~6)” 하신 말씀을 인용하며 하나님은 한 분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 말씀을 자세히 연구해보면 아버지 하나님이 한 분이라는 뜻이지, 하나님이 유일신이기 때문에 한 분만 존재한다는 뜻이 아니라는 것을 이해할 수 있다. 즉, 아버지로서의 하나님이 한 분이시며 아버지 하나님은 유일하게 한 분이라는 말씀이다. 다른 어떤 신도 우리의 아버지 하나님이 아니기 때문이다. “아버지는 한 분뿐”이라고 하신 것은 어머니 하나님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표현이 아니다. 오히려 어머니 하나님이 존재한다는 반증이다.


하나님은 분명 두 분이신데, 성경은 왜 “아버지는 한 분뿐이시니 곧 하나님이시로다”, “하나님도 하나이시니 곧 만유의 아버지시라”고 표현한 것일까. 이는 아버지 하나님께서 갖고 계시는 대표성 때문이다.


예를 들면, 한 가정의 구성원으로 아버지와 어머니가 있을지라도 가족의 대표인 아버지의 이름만 적어 문패를 거는 이치와 같다. 누구나 아버지의 이름이 갖는 대표성 때문에 그 집에 아버지 혼자만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당연히 어머니를 떠올리기 마련이다. 하늘 가족에도 이처럼 대표자이신 아버지 하나님이 계시고 어머니 하나님이 계신다.


또 다른 예로, 아담과 하와의 경우를 들 수 있다. 성경은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왔다”고 기록되어 있다(로마서 5:12~19). 즉, 아담 한 사람이 죄를 지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실제 에덴동산에서 선악과를 따 먹고 죄를 지은 사람은 아담과 하와 두 사람이었다. 죄를 지은 사람이 두 사람인데도 ‘한 사람’이라고 표현한 것은 아담이 갖는 대표성 때문이다. 이를 두고 하와는 죄를 짓지 않았다고 해석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따라서 “아버지는 한 분뿐이시니 곧 하나님이시로다”, “하나님도 하나이시니 곧 만유의 아버지시라” 하신 말씀을 “하나님은 한 분뿐”이라고 해석하는 것은 성경을 단편적으로만 이해하여 곡해한 것이다.

엘로힘, 성령과 신부

아버지 하나님과 어머니 하나님께서 구원의 역사를 이끄시는 장면은 성경 전반에 걸쳐 담겨 있다. 다음은 성경 마지막 장에 묘사된 두 분의 구원자에 대한 기록이다.


성령과 신부가 말씀하시기를 오라 하시는도다 듣는 자도 오라 할 것이요 목마른 자도 올 것이요 또 원하는 자는 값없이 생명수를 받으라 하시더라 (요한계시록 22:17)


하나님께서 성령과 신부의 모습으로 나타나셔서 구원을 베푸신다는 예언이다. 성령은 아버지 하나님이다. 신부(bride)는 말 그대로 성령의 아내이니 ‘어머니 하나님’인 것이다. 다시 말해 성령과 신부는 창조 시에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하시며 인류를 창조하신 엘로힘, 즉 아버지 하나님과 어머니 하나님이다.


어머니 하나님께서는 인류에게 영원한 생명을 허락하시기 위해 마지막 성령시대에 이 땅에 오셨다. 잃어버린 자녀를 찾는 일은 아버지만의 몫은 아닐 것이다.

출처: 패스티브 닷컴

참 선지자는 어머니 하나님을 증거함<하나님의교회>



거짓선지자는 하나님께서 보내시지 않은 가짜 선지자이며 가짜에게는 가짜라는 표시가 있기 마련입니다. 거짓 선지나는 하나님의 참 진리를 싫어하고 하나님의 진리를 모릅니다.
반면 참 하나님의 참 선지자는 성경에 기록되어 있는 하나님의 진리를 바로 알려서 백성을 천국으로 인도합니다.

거짓 선지자의 표시는 무엇인가?

마 7:13~15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이가 적음이니라 거짓 선지자들을 삼가라 양의 옷을 입고 너희에게 나아오나 속에는 노략질하는 이리라

마 7:21~23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 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치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그때에 내가 저희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

거짓 선지자는 겉으로는 깨끗한 척 양의 옷을 입고 나오나 불법인 성경에 없는 가짜를 행하는 자들입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 구원자는 성령과 신부이신 아버지 하나님과 어머니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나 거짓 선지자들은 신부이신 어머니 하나님은 없다고 거짓말을 하여 하나님 백성들을 미혹합니다.

과연 성경에 성령이신 아버지 하나님과 신부이신 어머니 하나님이 증거되어 있을까요?

계 22:17 성령과 신부가 말씀하시기를 오라 하시는도다 듣는 자도 오라 할 것이요 목마른 
자도 올 것이요 또 원하는 자는 값없이 생명수를 받으라 하시더라

계 21:9~10 일곱 대접을 가지고 마지막 일곱 재앙을 담은 일곱 천사 중 하나가 나아와서
내게 말하여 가로되 이리 오라 내가 신부 곧 어린 양의 아내를 네게 보이라라 하고 성령으로
나를 데리고 크고 높은 산으로 올라가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는 거룩한 성 예루살렘을 보이니

갈 4:26 오직 위에 있는 예루살렘은 자유자니 곧 우리 어머니라

참 선지자는 성령시대 구원자이신 성령이신 아버지 하나님과 신부이신 어머니 하나님을 증거합니다.

성령이신 아버지 하나님과 신부이신 어머니 하나님을 영접하려면 하나님의교회로 오세요^^


2013년 9월 16일 월요일

새언약 유월절이란?<하나님의교회>






재앙에서 구원주시는 새언약 유월절을 하나님의교회에서 전하면 다른 교회에서는
아무날이나 지켜도 되며 구약의 율법이기에 지킬 필요가 없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항상 새언약 유월절을 지킴으로 재앙가운데서 구원주신다는
약속을 담아 두셨습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성력 1월 14일 저녁에 행하는 새언약 유월절을 지켜서
하나남의 뜻대로 구원받으시기 바랍니다.

마태복음 26장 17-19절
무교절의 첫날에 제자들이 예수께 나아와서 가로되 유월절 잡수실 것을 우리가 어디서 예비하기를 원하시나이까 가라사대 성안 아무에게 가서 이르되 선생님 말씀이 내 때가 가까왔으니 내 제자들과 함께 유월절을 네 집에서 지키겠다 하시더라 하라 하신대 제자들이 예수의 시키신대로 하여 유월절을 예비하였더라


마태복음 22장 26-28절
저희가 먹을 때에 예수께서 떡을 가지사 축복하시고 떼어 제자들을 주시며 가라사대 받아 먹으라 이것이 내 몸이니라 하시고 또 잔(포도주)을 가지사 사례하시고 저희에게 주시며 가라사대 너희가 다 이것을 마시라 이것은 죄 사함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

하나님의 첫 번째 선물 = 침례

영국의 역사가 에드워드 기번은 그의 저서 '로마제국 쇠망사'에 이렇게 적었다.
 "예수님의 가르침을 받았던 사도 바울이나 베드로가 이 시대에 바티칸(로마 교황청)을 방문한다면 이처럼 장엄한 사원에서 그처럼 신비로운 의식으로 숭배받는 신의 이름이 도대체 무엇이냐고 물을 것이다. 그리고 바울이나 베드로가 옥스퍼드나 제네바(개신교 교리를 가르치는 신학교)에 가게 된다면 교리 문답서를 새로 외우고 또 그들의 주님에 관한 정통파 주석가들의 해석을 새로 공부해야만 하는 입장에 처하게 될 것이다."


'로마제국 쇠망사'라는 역사를 기록하기 위해 십수 년 동안 유럽의 구석구석을 돌아다녔던 역사가의 말을 빌어보건대 지금의 기독교는 초대교회의 사도들이 배우고 가르쳤던 진리들과는 전혀 다른 것들로 바뀌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이러다 보니 오늘날에는 예수님과 사도들이 본을 보이시며 가르치셨던 진리의 말씀대로 행하면 오히려 이상히 여기고 이단시하는 경향을 띠게 되었다. 예수님의 가르침을 이단이라고 한다면 정말 곤란한 문제가 발생하게 된다. 그러한 가르침을 주신 예수님을 이단이라고 정죄하는 것과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예수님을 믿노라 하면서도 예수님을 이단이라고 정죄하는 모순을 낳고 있는 것이다.


세례, 즉 침례에 대해서도 많은 교회에서 잘못 이해하고 판단하고 있는 진리 가운데 하나다. 성경에 기록된 그리스도의 가르침은 어느 것 하나 우리의 구원과 상관없는 것이 없다.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 모두 다 자녀들에 대한 사랑이 담겨 있는 생명의 진리다.


종교개혁 이후 ‘믿음으로 말미암은 구원’을 강조하다 보니 침례의 중요성을 알지 못하고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인 예식으로 받아들이는 교회들이 많이 있다. 그러나 하나님의 자녀로 거듭나 구원을 얻고자 하는 사람에게 있어 침례는 반드시 필요한 과정이다.


믿고 세례를 받는 사람은 구원을 얻을 것이요 (마가복음 16:16)


물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이제 너희를 구원하는 표니 곧 세례라 육체의 더러운 것을 제하여 버림이 아니요 오직 선한 양심이 하나님을 향하여 찾아가는 것이라 (베드로전서 3:21)


베드로가 가로되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얻으라 (사도행전 2:38)


죄인에게 죄를 용서받는 일만큼 중요한 일이 있을까. 침례는 죄를 씻어내며 구원을 선물로 받을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하나님을 만나 받게 되는 첫 번째 선물인 것이다.

출처; 패스티브 닷컴

2013년 9월 12일 목요일

왜 이 땅에서 사는가? <하나님의교회>





우리는 어디서 왔고 왜 이 땅에서 고통속에서 살다가 왜 죽을 수 밖에 없는 것일까요?

아무도 알지 못했고 풀지못했던 비밀을 성경에서 해답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우리의 고향은 하늘 나라입니다.

우리가 이 땅에서 사는 이유는 죄를 짓었기에 고통속에서 살고 있는 것입니다.

다시 하늘 고향에 돌아가려면 죄사함을 받는 새언약 유월절을 지켜야합니다.

새언약 유월절은 오직 하나님의교회만이 지키고 있습니다.




2013년 9월 11일 수요일

하나님의 본질 엘로힘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게 되나니 그러므로 저희가 핑계치 못할지니라 (로마서 1:20)

사도 바울은 로마교인들에게 보이지 않지만 존재하는 것들에 대해 확실한 믿음을 가져야 함을 강론하며 그 중 하나님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을 거론했다. 하나님의 능력은 무소불능(無所不能)이라는 네 글자 속에 잘 담겨있다. 그렇다면 사도 바울이 말하는 신성(神性)은 무엇인가. 신성은 하나님의 본질이다. 하나님의 본질에 대해서는 천지창조의 역사 속에 잘 드러나 있다.

하나님이 가라사대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로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육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창세기 1:26~27)

천지창조 가운데 육일째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창조하셨다. 그것도 당신의 형상대로 지으셨다.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된 남자와 여자를 보면 하나님의 형상 가운데 남성적 형상과 여성적 형상이 있음을 알 수 있다. 다시 말해 하나님의 본질은 아버지 하나님과 어머니 하나님으로의 존재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히브리어 성경에서는 하나님을 복수명사인 ‘אֱלֹהִים’ 엘로힘으로 기록하고 있다. 이는 ‘우리’라는 단어와 같은 뜻이다.

이것이 바로 신성(神性)이다. 사도 바울은 성경을 통해 보이지 않는 것들 가운데 아버지 하나님과 어머니 하나님이 계시며 그 능력으로 만들어진 세상만물이 하나님의 신성(神性)을 증거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아버지 하나님과 어머니 하나님의 존재함)이 그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게 되나니 그러므로 저희가 핑계치 못할지니라 (로마서 1:20)

즉, 엘로힘 하나님을 믿어야만 하나님의 본질을 제대로 알고 믿는 것이다.
출처: 패스티브 닷컴



2013년 9월 9일 월요일

가장 큰 이적과 기사는?<새언약 유월절>




성경 예언따라 임하신 재림 그리스도 안상홍님께서 하나님이시라면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것처럼 큰 이적과 기사가 있어야 하지 않느냐? 그런 증거가 없어서 믿을 수 없다고 주장한다. 과연 이 주장이 옳을까?

1. 기적이 그리스도를 알려주는 증거인가?
이적과 기사가 그리스도임을 알려주는 증거인가? 아니다.
거짓 그리스도들이 무엇으로 미혹하는가? 이적과 기사다.

마 24:24 거짓 그리스도들과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나 큰 표적과 기사를 보이어 할 수만
있으면 택하신 자들도 미혹하게 하리라

따라서 이적과 기사는 결코 그리스도를 알려주는 증거가 될 수 없다.
수많은 거짓 그리스도들이 등장하는 이 마지막 시대에는 이적을 따라가면 다 죽게 된다.

2. 기적을 보고도 그리스도를 떠난 자들
2천 년 전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5천 명을 먹이는 기적을 체험하였던 자들이
어떻게 되었는가? 그들이 그리스도를 올바로 알아보았는가? 아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떠나 영생을 얻지 못하였다

요6:66 이러므로 제자 중에 많이 물러가고 다시 그와 함께 다니지 아니하더라

그러므로 우리는 결코 이적과 기사를 통해 그리스도를 알아보려 해서는 안 된다.

3. 이 시대에 이루어질 가장 큰 기적
사실 안상홍님께서는 가장 큰 이적을 베푸셨다.
그것이 무엇인지 아는가? 우리를 죽지 않고 영생하게 하신 것이다.
만일 어떤 사람이 죽었다가 살아났다고 가정해보자.
그 사실에 온 세상이 떠들썩할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살아난 사람이 영원히 사는가?
아니다. 엘리야가 살린 아이도 죽었고 예수님께서 살리신 나사로도 죽었다.
그러나 안상홍님을 믿고 따르는 우리는 죽지 않고 영원히 산다ㅣ
이보다 더 큰 기적이 어디 있겠는가?

요 6:54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영생을 가졌고 마지막 날에 내가 그를 다시 살리리니

마태복음 22장 26-28절
저희가 먹을 때에 예수께서 떡을 가지사 축복하시고 떼어 제자들을 주시며 가라사대 받아 먹으라 이것이 내 몸이니라 하시고 또 잔(포도주)을 가지사 사례하시고 저희에게 주시며 가라사대 너희가 다 이것을 마시라 이것(유월절)은 죄 사함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

고전 15:50~52 형제들아 내가 이것을 말하노니 혈과 육은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받을 수 없고 또한 썩은 것은 썩지 아니한 것을 유업으로 받지 못하느니라 보라 내가 너희에게 비밀을 말하노니 우리가 다 잠잘 것이 아니요 마지막 나팔에 순식간에 홀연히 다 변화하리니 나팔 소리가 나매 죽은 자들이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고 우리도 변화하리라

새언약 유월절로 영생을 약속하셨으니 누구나 유월절 지키어 영생을 얻어야합니다.

그러므로 이적과 기사를 통해 그리스도를 알아보려고 하지 말고 성경의 예언을 살펴야합니다. 성경이야말로 그리스도를 알아볼 수 있는 확실한 방법입니다.






여자가 머리를 가려야 하는 이유는?



사도시대로 접어들면서 복음은 유대뿐만 아니라 지중해의 여러 이방 지역으로 전파되기 시작했다. 초기에는 다른 규례와 마찬가지로 여자 성도들이 수건을 쓰는 문제도 아무런 거부감 없이 순종하여 잘 지켜왔다. 그런데 차츰 남녀평등을 선호하는 부류들이 생겨나면서 “남자들이 쓰지 않는 수건을 구태여 여자들이 써야 될 이유가 무엇인가?”라는 주장이 제기되었고 고린도 지역에서 반발이 일어나기에 이르렀다.


이에 사도 바울은 이들의 그릇된 생각을 일깨워주기 위하여 고린도교회에 편지를 보내 여러 가지 이유를 들어 여자들이 마땅히 머리에 수건을 써야 함을 강조했다.


내가 그리스도를 본받는 자 된 것같이 너희는 나를 본받는 자 되라 (고린도전서 11:1)


사도 바울은 먼저 성도들에게 전하는 가르침이 자신의 사상이나 개인적인 의견이 아닌, 그리스도의 가르침이라는 것을 언급했다. 이어 예배 때 여 성도들은 머리를 가려야 한다고 가르치고 있다. 즉 머리수건 규례는 그리스도의 가르침인 것이다. 그렇다면 예배드릴 때 여자가 머리를 가려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러나 나는 너희가 알기를 원하노니 각 남자의 머리는 그리스도요 여자의 머리는 남자요 그리스도의 머리는 하나님이시라 무릇 남자로서 머리에 무엇을 쓰고 기도나 예언을 하는 자는 그 머리를 욕되게 하는 것이요 무릇 여자로서 머리에 쓴 것을 벗고 기도나 예언을 하는 자는 그 머리를 욕되게 하는 것이니 이는 머리 민 것과 다름이 없음이니라 (고린도전서 11:3~5)


“머리에 쓴 것을 벗고 기도나 예언을 하는 것이 머리 민 것과 다름이 없음이니라” 한 의미는 구약의 율법에서 찾아볼 수 있다. 여자의 머리는 남자를 상징하기 때문에 여자가 남자 앞에서 수건을 벗는 행위를 아주 수치스러운 일로 여겼다. 또한, 포로로 잡혀온 이방 여인을 아내로 맞이할 때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던 수치스러움을 씻기 위하여 그 여자의 머리를 밀었다. 다시 말해 “여자로서 머리에 쓴 것을 벗고 기도나 예언을 하는 자는 ··· 머리 민 것과 다름이 없음이니라” 한 말씀은 대단히 수치스럽다는 뜻이다. 이것이 여자가 머리를 가려야 하는 그 첫 번째 이유다.


하나님께서 정하신 규례는 작은 것 하나라도 의미 없이 정하신 것이 없다. 모든 것이 우리가 천국 가는 데 필요하기 때문에 정하신 것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예배를 드릴 때 여자들이 머리에 수건을 쓰는 규례 또한 소홀히 해서는 안 될 것이다. 그리스도의 가르침에 따라 남자 성도들은 머리에 아무것도 쓰지 말아야 하며, 여자 성도들은 수건으로 그 머리를 가려야 한다.


출처 : 패스티브 닷컴

2013년 9월 8일 일요일

사람으로 오신 하나님<어머니 하나님>



하나님께서 사람으로 오셨다는 사실을 믿기 어렵다.
어떻게 사람을 하나님으로 믿을 수 있는가? 라고 주장한다.
과연 이 주장이 옳은가?

1. 하나님은 사람으로 오실 수 있다.
사람은 하나님이 될 수 없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얼마든지 사람으로 오실 수 있다.
6일 창조나 홍해를 가르신 역사는 쉽게 믿어지는가?
`전능하신` 하나님께서는 모든 일을 하실 수 있고, 당연히 사람으로도 오실 수 있다.

2. 사람으로 오신 하나님을 믿는 종교가 기독교
기독교는 사람으로 오신 하나님을 믿고 전하는 종교이다.

사 9:6 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는데 그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 것임이라

전능하신 하나님, 영존하시는 아버지`께서어떻게 오시는가?
 한 아기 즉 사람으로 탄생하신다. 이 예언을 성취하신 예수님을 믿는 것이 기독교이다.
그러나 2천 년전의 유대인들은 사람으로 오신 하나님을 믿지 못하였다.

요 10:33 네가 사람이 되어 자칭 하나님이라 함이로라

그래서 그들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았다. 우리가 그들의 실수를 반복해야 하는가?

성경은 하나님께서 얼마든지 사람으로 오실 수 있음을 증거하고 있다.
성경시대 구원주시려 이 땅에 임하신 성령(아버지 안상홍님)과 신부(어머니 하나님)을
믿고 영접하여 영생하는 자녀들이 되어야 한다.




2013년 9월 7일 토요일

하나님은 한 분? 두 분???<어머니 하나님>



성경은 하나님께서 홀로 한 분이시라고 하였다. 그런데 어떻게 두 분일 수가 있는가? 따라서 하늘 어머니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과연 이 주장이 맞을까?

딤전 2:5 하나님은 한 분이시요 또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중보도 한 분이시니 곧 사람이신 
그리스도 예수라

딤전 6:15 하나님은 복되시고 홀로 한 분이신 능하신 자이며

1. 왜 `우리`라하였는가?
홀로 한 분만 계신데 왜 창세기 1장에서는 단수인 `나`라고 하지 않으시고,
복수인 `우리`라고 하셨을까?

2. 한 분 하나님 안에 두 형상의 하나님이 존재함
예를 들어 계란 하나를 생각해보자. 계란은 하나이지만 그 속에는 흰 자와 노른자가 있다.
이처럼 `하나님`이라는 말 속에는 이미 `아버지 하나님, 어머니 하나님`이다 포함되어 있다.
하나의 계란에 두 부분이 존재하듯이 홀로 한 분이신 하나님 안에 두 형상의 하나님이       존재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두 분이신 하나님을 한 분이시라고 말하더라도 무순이 아니다.

3. 아담과 하와를 대표하는 한 사람 아담

롬 5:12~15 이러므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 오고 ... 그러나 아담으로부터 모세까지 아담의 범죄와 같은 죄를 짓지 아니한 자들 위에도 사망이 왕 노릇 하였나니 ...
곧 한 사람의 범죄를 인하여 많은 사람이 죽었은즉

여기서 `한 사람의 범죄`는 누구의 번되를 뜻하는가?
아담이다.그러나 실상 제일 먼저 죄를  범한 사람은 하와이다.
따라서 `하와` 한 사람의 범죄라고 표현하거나 아담, 하와 `두 사람`의 범죄라고 해야 한다.
그러나 성경은 아담 한 사람의 범죄라고 하였다. 왜 그러한가?
비록 아담과 하와가 두 사람으로 존재하지만, 한 사람처럼 여기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아버지 하나님과 어머니 하나님 두 분이 존재하시지만 한 분이신 하나님이라
말할 수 있다.

그러므로 `홀로 한 분`이라는 표현 때문에 `우리`라고 하신 아버지 하나님과                     어머니 하나님이 부인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2013년 9월 5일 목요일

우리의 본향은?<새언약 유월절>




우리는 어디서 왔고 왜 이곳에서 살다가 죽을 수 밖에 없는 것일까요?

아무도 해답을 알지 못한 비밀을 하나님께서 풀어 주셨습니다.

창 2:7 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 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된지라

전 12:7 흙은 여전히 땅으로 돌아가고 신은그 주신 하나님께로 돌아가기 전에 기억하라

성경은 죽음을 가리껴 하늘로 돌아간다고 표현하고 있다.

즉 우리는 이 땅에 오기전 하늘에 있었던 천사였던 것이다.


하늘에서 죄를 짓고 이 땅에 내려온 천사들이기에 이 땅에서 살면서 하나님의 뜻대로 죄사함을 받아야 다시 우리의 고향으로 돌아갈수 있습니다. 

마 26:27~28 또 잔(유월절 포도주)을 가지사 사례하시고 저희에게 주시며 가라사대 너희가 다 이것을 마시라 이것은 죄사함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하늘 본향으로 돌아갈 수 있는 방법으로 새언약 유월절을 지키므로
돌아갈 수 있음을 보여주셨습니다.

새언약 유월절 지키는 하나님의교회로 오세요^^



2013년 9월 4일 수요일

하나님의교회의 정통성<새언약 유월절>




오늘날 온전한 진리를 가진 구원받을 진리가 있는 교회는 어디인가요?

예수님께서 세워주신 새언약 진리가 있는 하나님의 교회입니다.





진리를 온전히 지키는 하나님의교회로 오세요
하나님의교회는 천국복음을 가진 정통교회입니다.

2013년 9월 2일 월요일

면죄부의 실체<새언약 유월절>

중세시대 가톨릭교인들은 돈이 많이 필요했을 듯싶다. 자기를 위해,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해 교회에서 발행하는 어떤 증명서를 사야 했으니 말이다. 증명서란 흔히들 알고 있는 ‘면죄부’, ‘면벌부’, ‘속죄부’라는 것인데, 연옥에 머무르는 시간을 단축시키거나 없앨 수 있는, 탐나는(?) 문서였다.

그 발칙한 제도가 생긴 건 11세기 십자군 전쟁 때였다. 교황 우르바노 2세가 십자군 전쟁에 참전한 사람들에게 ‘너는 벌을 면해주마’ 하는 특혜를 제공하기 시작했는데, 참전하는 대신 기부금을 내는 사람에게도 그와 동일한 혜택을 주었던 것이다. 이후 면죄부 판매는 교황청의 주요 수입원이었는데, 교황 레오 10세는 로마의 산피에트로대성당을 리모델링할 막대한 자금을 필요로 했고, 청산해야 할 빚도 있었다. 그는 타고난 영리함으로 비책을 썼다. 독일의 대주교 테첼을 시켜 교인들에게 엄청난 양의 면죄부를 팔도록 했던 것이다.

테첼은 순진한 영혼들에게 이렇게 설교하고 다녔다. “여러분이 사랑하는 죽은 친척들과 친구들이 여러분을 향해 애원하며 부르짖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시기 바랍니다. ‘우리를 불쌍히 여기시오. 우리는 무서운 고통 중에 빠져 있는데 당신들은 적은 돈으로 우리들을 건져낼 수 있지 않소!’ 여러분은 저들을 건져내기를 원치 않습니까? 아버지가 아들에게, 어머니가 딸에게 애원하며 부르짖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십시오. 동전이 여러분의 부모들을 구해낼 수가 있습니다. 동전이 궤 속에 떨어지는 소리와 함께 그들의 영혼이 연옥에서부터 벗어나게 됩니다.”

설교를 들은 가톨릭교인들은 그걸 사겠다고 애썼을 것이다. 지옥 다음으로 두려운 연옥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데, 빚을 내서라도 그 증명서를 구하고 싶지 않았겠는가 말이다. 면죄부의 가격은 신분에 따라 차이가 있었다. 일반적으로 평민들은 면죄부 한 장당 ‘4분의 1플로린’을 내야 했다. 참고로, 플로린은 당시 사용하던 금화로, 1플로린을 지금의 화폐가치로 따진다면 40만원가량이니 한 장당 10만원 꼴인 셈이다. 당시 이 돈이면 허름한 집 6개월치 월세요, 송아지 3마리 값이다. 평민들이 이 돈을 모으려면 몇 달 동안을 한 푼도 안 써야 한다. ‘무전 유죄 유전 무죄’는 이때부터 생긴 말이 아닐까 싶다.

보다 못한 독일의 사제, 마르틴 루터가 폭발했다. 그가 살던 비텐베르크에까지 면죄부 판매 바람이 불어왔기 때문이다. 루터는 1517년 10월 31일, 비텐베르크성교회 정문에 면죄부와 연옥에 대한 반박문을 골자로 한 ‘95개조 의견서’를 내걸고 공개토론을 요구했다. 그리하여 마침내 트리엔트 공의회를 통해 면죄부 판매를 규제하기 시작했고 점차 사라지게 되었다. 대신, 마르틴 루터는 1521년 교황 레오 10세에게 파문당했다.

성경은 오직 하나님만이 죄를 사할 수 있다고 기록한다. 구원은 하나님의 은혜요, 그리스도의 보혈로써 이루어지는 것이다. 돈을 주고 사려야 살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한낱 금전을 위해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한 가톨릭의 죗값은 하나님께 억만금을 바친다 한들 사함받을 수 있을지 의문이다.

출처: 패스티브 닷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