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7월 7일 일요일

배려가 담긴 소통, 복음을 완성하는 첩경<하늘 어머니>

갓 태어난 아기는 가장 먼저 울음을 터뜨린다. 울음을 터뜨리는 동시에 공기가 페로 들어가 처음으로 숨을 쉰다.

첫울음음 첫 번째 호흡이다. 동시에 세상과의 첫 소통을 의미한다. 우렁찬 울음소리로 자신의 존재를 알리는 것이다.처음으로 호흡한 순간부터 생명을 다하는 날까지 숨을 쉬는 것처럼 사람은 평생 가족, 친구, 동료, 이윗과 소통하며 살아간다.
타인과의 소통은 정신적 호흡이라 할 수 있다. 편히 호흡하는 것이 건강의 기본 요소이듯, 막힘 없는 소통은 행복한 삶의 밑거름이다.

인간은 제아무리 능력이 뛰어난 사람이라 해도 혼자서는 살아갈 수 없기에 소통하며 사는 존재다.
식당에서 음식을 사 먹고 슈퍼마켓에서 물건을 구입하는 사소한 일상부터 교육, 사업, 정치, 외교 등 국운이 좌우되는 중차대한 일가지 모두 `말하고 듣는` 인간관계를 통해 이루어진다.
고대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는 이러한 특성을 강조하며 인간을 `사회적 동물`이라 지칭했다.
오늘날 통신 기술의 획기적인 발전은, 보다 넓고 간편한 소통 생태계를 조성하고 잇다.
스마트폰의 화면을 손가락으로 두드리기만 하면 지구 반대편 친구에게 즉시 메시지를 전송하는 것이 가능하다.종일 손에서 스마트폰을 놓지 않는 생활 습관이 사회 문제로 불거질 정도로 세계적 열품이 불고 있는 SNS* 신드롬은 현대인들의 넘치는 소통 욕구를 대변한다.
이쯤 되면 소통이 끼니마다 먹는 밥만큼 중요하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직장인으로서 불행하다고 생각되는 이유 1위는 적은 급여나 업무 능력 부족이 아닌 `어려운 인간관계`다.
그만큼 인간관계가 중요하지만 동시에 어렵다는 뜻이다.

현대인의 대화 스타일도 소통을 불통으로 만드는 데 한몫한다. 모든 일이 `빨리빨리` 처리되는 오늘날은 대화 역시 즉흥적으로 이뤄진다.
생각할 시간도 없이 나오는 대로 바로바로 말하고 메시지를 보내며 댓글을 단다. 머리보다 입이 먼저 반응하고 손가락이 더 빨리 움직인다.
부주의한 말 한마디가 다툼의 불씨가 되고 오해의 싹이 된다.
여기에 잘못된 말버릇은 인간관계를 더욱 악화시킨다. "네가 뭘 안다고 그래", "넌 좀 빠져, 설명해줘도 모르잖아"같이 무시하는 말투와, "너는 그래서 문제야", "넌 언제나 그 모양이야"처럼 공격하는 말투는, 말하는 의도와 관계없이 상대의 자존감을 손상시키고 화나게 만든다. 이런 말투는 자신도 모르게 습관처럼 나오기 때문에 상대방이 불쾌해해도 정작 자신은 원인을 모르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렇기 때문에 원활하게 소통되지 않는 이유를 상대방에게서만 찾는다면 문제를 해결하기 힘들어진다.
`불통`을 `소통`으로 바꾸고 싶다면 내 의견만 주장하고 있지 않은지, 생각없이 말하지는 않는지, 나도 모르게 나오는 말버릇은 없는지, 꼼꼼한 자기 성찰이 필요하다.

소통의 사전적 정의는 `뜻이 서로 통하여 오해가 없음`이다. 서로 뜻이 제대로 통하기까지는 의견을 조율하고 이해하는 과정이 필요한데 이때 요구되는 자세가 바로 `경청`인 듣기가 중요하다.

잠 14:3~4 미련한 자는 교만하여 입으로 매를 자청하고 지혜로운 자는 입술로 스스로 보전하느니라 소가 없으면 구유는 깨끄사하려니와 소의 힘으로 얻는 것이 많으니라

하늘 가족이 갈등과 오해, 반목 없이 사랑으로 화합하기 위해서는 소통의 과정이 필요하다.
소통,결코 어려운 일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대하실 때처럼 행하면 된다.
마음에 가득한 것이 입으로 나온다는 말씀처럼(마 12:34), 하나님의 마음을 가지고 하나님께서 보여주신 본을 따르는 것이 최고의 소통법이다.

요 13:1,4~5 유월절 전에 예수께서 자기가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로 돌아가실 때가 이른 줄 아시고 세셍에 있는 자기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니라
저녁 잡수시던 자리에서 일어나 겉옷을 벗고 수건을 가져다가 하리에 두르시고 이에 대야에 물을 담아 제자들의 발을 씻기시고 그 두르신 수건으로 씻기기를 시작하여

인류 인생의 구원을 위해 모두가 알아볼 수 있는 육체로 임하셔서 누구나 알아들을 수 있는 음성으로 말씀하신 예수님, 십자가 고난을 앞둔 유월절 만찬에서 예수님은 제자들보다
더 낮은 자세로, 하찮게 여겨지는 발을 씻기시며 섬김의 소통을 본보여주셨다.

오늘날에는 하늘 어머니께서 자녀들과 눈높이를 맞추시고 한 사람, 한 사람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시며, 겸손의 소통을 본보여주고 계신다. 어제도 오늘도,하나님께서 자녀들과 소통하시는 방법은 겸손과 섬김이 어우러진 `배려`다.

벧전 5:5~6 다 서로 겸손으로 허리를 동이라 하나님이 교만한 자를 대적하시되 겸손한 자들에게는 은혜를 주시느니라 그러므로 하나님의 능하신 손 아래서 겸손하라 때가 되면 너희를 높이시리라

출처 : 하나님의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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